'좋은글 모음'에 해당되는 글 375

  1. 2001.04.07 죽음보다 강한 사랑 2
  2. 2001.04.07 잃어버린 40년의 세월
  3. 2001.04.07 우정이라는 선물
  4. 2001.04.07 왼손과 오른손 사이
  5. 2001.04.07 냄새나는 아이
  6. 2001.04.07 인생의 격언
  7. 2001.04.07 도마뱀의 사랑
  8. 2001.04.07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9. 2001.04.07 사랑이야기
  10. 2001.04.07 19가지 사랑 이야기`
  11. 2001.04.07 Love와 Like
  12. 2001.04.07 사랑이란...
  13. 2001.04.07 초상
  14. 2001.04.07 얼마나 좋을까
  15. 2001.04.07 또 기다리는 편지
  16. 2001.04.07 사랑굿 1
  17. 2001.04.07 사랑의 지옥
  18. 2001.04.07 어마마마
  19. 2001.04.07 이런 사랑
  20. 2001.04.07 누나의 일기장

죽음보다 강한 사랑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짜리 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등산을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응급수술을 받던 중 피가 필요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은 딸 뿐이었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오빠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딸아이는 이 질문에 잠시 동안 무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의사가 대성공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까지 딸 아이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네 덕분에 오빠가 살게 되었어!”
아빠의 말을 들은 딸이 낮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와! 정말 기뻐요. 그런데… 나는 언제 죽게 되나요?”
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죽다니. 네가 왜 죽는단 말이냐?”
“피를 뽑으면 곧 죽게 되는 게 아닌가요?”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른 뒤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넌 죽을 줄 알면서 오빠에게 피를 주었단 말이냐?”
“예… 전 오빠를 사랑하거든요.”
(낮은 울타리 94.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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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40년의 세월

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열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펴주면 드러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동안은 참 편했습니다.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셋째,넷째….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전에 헤어진 그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 내다버린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아홉명의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고 내다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낮은 울타리.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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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선물

옛날 페르시아에 샤 아바스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대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였지만,
평범하게 변장을 하고 서민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은 거지로 변장을 하고
깊은 지하실에 있는 화부를 만나러 갔습니다.

화부는 석탄과 재가 뒤섞인 어두운 방에서
불이 꺼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누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왕은 앉아서 화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식사 때는 화부가 먹는 빵과 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만나다 보니
그 외로운 사람에게 동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마음을 열고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는 말했습니다.
“이보게, 내가 누군 줄 아는가?
자네는 나를 거지인 줄 알겠지만,
실은 나는 샤 아바스이네, 이 나라 황제이네.”

거지는 놀란 표정도 짓지 않고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자네처럼 생각이 깊은 사람이면
나는 자네를 부자로 만들 수도 있고,
고관 대작으로 만들 수도 있고,
어떤 지방의 성주로 만들 수도 있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게.”

화부는 말했습니다.

“황제 폐하,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황제께서 저에게 해주신 일이 어떤 일인지 아십니까?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셔서 제 옆에 앉으셨고,
제가 먹는 음식을 함께 잡수셨고,
저의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생각해 주셨습니다.
어떤 값진 선물도 주시지 않았지만,
폐하는 폐하 자신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오직 바랄 것이 있다면,
우정이라는 선물을 거두지 마시옵기 바라옵니다.”

E. 영이라는 시인은 ‘우정은 인생의 술’이라고 했지만,
키케로는 “인생에 있어서 우정이 없다면
이 세계에 태양이 없는 것과 같다.
신들이 인간에게 베풀어 준 것 가운데
이처럼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했습니다.
인정이 메마른 세상이라고 탓하지 말고
“진정한 우정은 영원하다.”는
피타고라스의 말을 믿으며 가슴을 열고 다가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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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과 오른손 사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밀레는
그림 공부를 하러 파리로 나가고 싶었지만,
가족을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밀레의 그림 솜씨를 아낀 친구가
가족은 자기가 돌볼 테니 유학을 가라고 합니다.

파리로 나왔지만, 가난한 밀레는
돈벌이를 위해서 누드를 그렸습니다.
어느 날 밀레의 그림을 보던 사람들이
비웃는 투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이때부터 농민의 그림을 그리자고 결심합니다.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추운 날에도 난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인 장 자크 루소가 오더니,
“이봐 좋은 일이 있어, 자네 그림을 살 사람이 있어.
여기 돈도 있잖아.”
하며 3백 프랑이라는 거금을 내놓았습니다.
“그림 선택은 내게 맡겼으니까,
저 ‘접목하는 농부’를 주게.”
밀레의 가족은 오랜만에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루소의 집을 방문한 밀레는 깜짝 놀랐습니다.
루소의 집에 그 ‘접목하는 농부’가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밀레가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자,
고향 친구에게 감사하러 찾아갔습니다.
친구 집을 찾았을 때 그 친구는 손을 모아 쥐고
“밀레가 꼭 성공하게 도와 주소서!”
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격한 밀레는 그 감동을 화폭에 남겼습니다.
‘손’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는 성서의 말씀이 있지만, 왼손은 고사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밀레의 친구들이 보인 행동을 보면
오른손과 왼손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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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는 아이

중학교 시절, 우리반에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여드름 투성이인 그 친구는 늘 외톨이였다. 옷도 유행에 뒤쳐진 단벌뿐인 그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를 아이들은 무척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그를 구박하고 메스꺼운 표정을 지으며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그래도 항상 밝은 얼굴로 나를 대하던 그는 지각이 잦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더러운 놈, 냄새풍기지 말고 아무도 없을 때 좀 일찍일찍 다니면 안 되냐?"고 면박을 주었다.

뉴스에서 불볕더위라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어느 날이었다. 여름방학이었지만 고입시험을 앞둔 우리는 보충수업을 받았는데 그날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나는 허둥지둥 엄마 차를 얻어타고 학교 근처에 내려서 학교를 향해 언덕길을 뛰어 올랐다. 헉헉거리며 급히 뛰어가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뒤에는 내 또래의 한 아이가 냄새나는 수레를 묵묵히 밀고 있었다. "또 지각이잖아. 그만 가래도" "아니에요. 십오분밖에 안 늦었어요.마저 끝내놓고 가도 괜찮아요" 그순간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바로 냄새나는 아이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본 그가 멋쩍은 듯 말했다."우리 아버지야" 그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고는 계속해서 수레를 밀었다. 그날 나는 지각한 벌로 매를 맞았는데도 왠지 흐뭇했다. 그뒤로 나는 그의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아마 앞으로 냄새나는 그 아이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 되었지만 그 친구는 지금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살고 있으리라.

<좋은 생각.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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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격언

이곳에서 누군가 웃고 있으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는 것이다
---------------------------------------------------------------
믿음이란
겨울이면 화로와 같은 것이고
여름이면 이슬과 같다
---------------------------------------------------------------
여자의 가장 좋은 장신구는
황금이 아니라 훌륭한 행실이다
---------------------------------------------------------------
참다운 벗, 참다운 애인들끼리의 다툼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
촛불이 꺼지면 여인은 모두 아름다운 법이다
---------------------------------------------------------------
한 평생 이렇다 할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완전히 거짓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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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의 사랑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집의 벽을 수리하기 위해서 뜯었다.
일본집의 벽이라는 것은
그들의 말로 소위 "오가베"라 하여
가운데에 나무로 얼기설기 대고
그리고 그 양쪽에서 흙을 발라 만드는 것으로서
속이 비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벽을 뜯다 보니까 벽 속에
한 마리의 도마뱀이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그 도마뱀은 그저 보통 갇힌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벽 밖에서 안으로 박은 긴 못에
꼬리가 물려 꼼짝도 못하게 갇혀 있더라는 것이다.
집 주인은 그 도마뱀이 가엾기도 하려니와
약간 호기심이 생겨
그 못을 조사해 봤다.
집주인은 놀랐다.
그 도마뱀의 꼬리를 찍어 물고 있는 못이
바로 십 년 전
그 집을 지을 때 벽을 만들며 박은 못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도마뱀은 벽 속에 십 년간...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캄캄한 벽속에서 십 년간이란 긴 세월을 살았다는 것도 놀랍다.
그런데 그렇게 꼬리가 못에 박혔으니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그 도마뱀이
도대체
십 년간이나 그 벽속에서 무엇을 먹고 산 것일까?
굶어서?
그럴 수는 없다.
집주인은 벽 수리 공사를 일단 중지했다.
"이 놈이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잡아 먹는가?"하고
그런데 어떤가.
얼마 있더니 어디서 딴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살금살금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집 주인은 정말로 놀랐다.
사랑!
그 지극한 사랑 !
그 끈질긴 사랑 !
그 눈물겨운 사랑 !
그러니까 벽 속에 꼬리가 못에 찍혀 갇혀 버린 도마뱀을 위하여
또 한 마리의 도마뱀은
십 년이란 긴 세월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먹이를 물어 나른 것이다.
그 먹이를 물어다 준 도마뱀이 어미인지 아비인지
그렇지 않으면 부부간 혹은 형제간인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말을 듣고
숭고한 사랑의 힘에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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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아이가 공책에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뭘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니? "
"엄마에게 청구할 돈을 계산하고 있었어요."
"궁금하구나. 어디 한번 보자"
"예, 지금 막 계산이 끝났어요. 보시겠어요?"
엄마는 아이가 꼼꼼하게 적어놓은 계산서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유받아오기 세번 300원, 부엌청소 두번 400원, 마당청소 세번 600원.
구두닦기 네번 800원, 식탁차리기 네번 400원, 합계 총 2,500원

아이의 엄마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청구서를 써볼테니 네가 한번 봐주겠니?"
"엄마도요?"
"응"
"엄마도 저한테 용돈을 타시려고요? 엄만 한게 없잖아요?"
그러면서 아이의 엄마는 청구서를 써 내려갔습니다.

팔년간의 식사제공 0원, 수없이 많은 설거지와 빨래 0원, 아플 때 병간호 0원.
숙제 도와준 것, 온갖 시중들기 0원, 합계 0원.

"그런데 왜 엄마는 0원이라고 적으셨죠?"
"왜냐하면 엄마는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엇이든 주고 싶어서지.그러나 네가 청구한 2,500원은
주마"
이야기가 끝난 후 엄마는 아이에게 돈을 주기 위해 지갑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엄마,저도 엄마에게 한푼도 안받겠어요"


- 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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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

<center>그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무명화가였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아시자마자 반대했습니다.

내 딸을 그렇게 가난하고 무능한 사람한테 보낼수없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단호했습니다.

남자는 갈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 이젠 그녀를 찾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몰래 그남자의 허름한 화실에 와서 밥을 지어주고,

그림을 보고, 그리고 돌아가는 일이 종종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그렇게 돌려 보낼 때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녀를 돌려 보낼 때마다 다시는 찾지 말아야지 이렇게 결심했던,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이 하늘아래에서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게 도대체 어떤게 있을까? 그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그녀를 만날 수 없던 날이 지나고, 어느날 그녀가 예쁜 모자를 쓰고 찾아왔습니다.

그 남자는 그 모자를 벗겨보았습니다.

그녀의 머리는 삐죽삐죽 보기 흉하게 잘려있었습니다.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하기 위해서 그녀의 어머니가 잘라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저 울고만있는 그녀를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녀의 초상화...

그리고, 그남자는 너무 피곤해 지쳐있는 그녀를 침대위에 눕히고

자신은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따뜻한 연탄의 난로를 피워둔체, 그 다음날 그녀에게 남겨진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와 그남자의 사늘하게 식은 주검이었습니다.

남자는 일부러 연탄난로에 가스가 새어나도록,

세게 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은 것이었습니다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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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가지 사랑 이야기`

<center>
돌아서지 못하는 사랑

그러면서

눈물만 흘리는 사랑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사랑

멀리서 그리워만 하는 사랑

가슴으로 하는 사랑

그래서 시시한 사랑

손 한번 못 잡고 헤어지는 사랑

마음으로 찡하는 사랑

혼자하는 사랑

그래서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항상 부담이 가는 사랑

목숨까지 바치겠다며

허풍 떠는 사랑

누가 뭐래도 무조건적인 사랑

시를 쓰며 위로 하는 사랑

종이학을 접으며 기도하는 사랑

돈 없으면 못 만나는 사랑

일년에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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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와 Like

<center>
사랑하는사람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즐거워 집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겨울도 봄같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겨울은 겨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눈빛을 보면 얼굴이 붉어지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웃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을 다 할 수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기억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가끔 기억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 해 주고 싶습니다.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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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1. 도둑놈과 같은것.....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이 찾아와 물건을 가져 가듯이,..

언제 어디서 내 마음을 가져갈지 모르는 것...

그렇기에 사랑을 잡지 않으면 마음을 돌려 받을 수 없고 잡는다 하더라도 마음 모두를 돌려 받을 수 없는 도둑놈과 같은것...



2.책상에 펴 놓은 일기장과 같은 것...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은근슬쩍 시치미 떼는 것? 떠~억하니 보라고...

펼쳐져 있는 책상 위의 일기장처럼 감추려고 노력하여도 언제 어디서든지 드러나는 것...

자신은 감춘다고 말해도 다 드러나 보이는 그런 것...




3. 균형 맞추려는 저울과 같은 것...

한쪽이 너무 무거우면 저쪽에 조금 더하고, 저쪽이 너무 무거우면 한쪽에 조금 더하듯이,

한쪽의 사랑이 너무 크면 저쪽의 사랑을 높이고, 저쪽이 너무 무거우면 한쪽을 또 높이고 싶은..

그렇게 해야 이루어지는 것...




4. 어두운 동굴속에서 비취는 빛과 같은것...

어두운 동굴에서 비춰드는 빛을 따라 밖으로 나아가듯이,..

때로는 사랑만으로도 삶이라는 어두운 동굴을 나아갈 수 있는것...

그런 빛과 같은 것...



5. 바로 '너' 와 같은것...

'너' 가 있으므로 해서 내가 사랑을

느끼고 있으므로 넌 바로 '사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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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내가 맨처음 그대를 보았을 때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
남 모르게 호사스러운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듯이 바다기슭을 다름질쳐 갔습니다.


- 조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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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을까

너의 맑은 두 눈에
그리움이 아니더라도
보고픔이 아니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느낌이 비추어진다면


어느 한 사람이
목메이도록 나를 그리워해
전화벨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면
많이 미안하겠지만


그러고 산다는 걸
내가 알게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너였으면.



- 원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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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정호승 -

  1999-07-02 15:17:26  41  203.246.183.210  Plain-Text
30 sonamu 얼마나 좋을까 너의 작은 두 손에
붉은 장미가 아니더라도
하얀 안개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 전해줄 수 있는
꽃 한 송이 안겨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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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1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 김초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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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지옥

정신없이 호박꽃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운다

- 유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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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마마

1. 벌레잡기 (殺蟲)
----------------------

우리집은 외딴 시골이기 때문에 언제나 각종 벌레들로 온 집
안이 들끓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벌레를 못들어오게 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살충유택(殺蟲有擇) 이 불가피(不可避) 하
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놈의 징그러운 벌레들을 잘 잡
아오셨다. 거대한 바퀴도, 발이 오십개가 넘는 쉰발이도, 각
종 해충(害蟲) 들을 어머니는 매일같이 섬멸(殲滅) 해 오셨
다.

어릴 적, 나는 이런 어머니를 보며 "더럽게 벌레는 뭐하러 잡
으세요 !" 하고 오히려 화를 내곤 했었다. 내생각은 어차피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올 벌레를 그렇게 잡는 건 벌레에게 너무
가혹(苛酷)한 일이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잠자코 뽀삐휴지 (35m) 두 칸을 떼내어 손을
먼저 닦으신 후 다리와 몸통과 머리가 제각기 헝클어져 산재
(散在) 된 벌레의 잔해(殘骸)들을 조심스럽게 주워담으셨다.
그러면 나는 괜히 돕지도 못하고 말만 한 데 대해 미안해져서
또 한마디 한다.

"그깟 휴지좀 아껴쓰지 말고 팍팍 쓰세요. 바퀴벌레 터진 국
물 손에 다 묻잖아요. 나중에 제가 크면 돈벌어 휴지 한 박스
사드릴께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냥 싱긋 웃으시며 "이제 다 됐다." 하시면
서 남은 벌레건데기와 국물을 휴지의 뒷면으로 깨끗이 닦아낸
후 쓰레기통에 넣으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벌레를 발견하게 되면 그냥 못
본 척 지나쳐왔고, 지나가시던 어머니가 행여나 발견이라도
하시는 날엔 기껏해야 F-KILLER 라도 뿌리는 시늉을 했다. 물
론 죽은 뒤에도 휴지는 보통 10칸정도 떼내서 확인사살 같은
건 하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중에 살아나거나
말거나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집안을 돌아다니는 각종 벌레수가 급격히 증가하
기 시작했다. 그동안 방생(放生)했거나 일부러 죽이지 않고
놔두었던 벌레들이 알을 까고 새끼를 배출(倍出)해 내기 시작
한 모양이다. 특히 그 수가 많아진 벌레는 내가 가장 손대기
싫어했던 '쉰발이'였다.

부끄럽게도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어머니가 벌레를 원래부터
무서워하시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 오히려 손으로 벌레를
잡는 어머니를 보고 야만스럽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
나 결혼 후 시골에서 삼십여년 간 생활해 오시면서 스스로 살
기좋은 환경을 조성(造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인해지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다리 오십개가 넘고 등이 시커멓게 번들번들한 그런
벌레를 손으로 잡는데 누가 싫지 않을까 ? 뒤늦게 반성의 마
음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 산재(散在) 된 각종 '벌레와
의 전쟁' 을 공동으로 선포하고, 어머니는 F-킬러와 휴지로,
또 나는 홈키퍼,파리채와 맨손으로 벌레들에 살육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이젠 어머니가 발견한 쉰발이를 내손으로 쳐 죽이기도 한다.
이젠 어머니가 맨손으로 치지 말라고 말리기 시작하셨다. 이
유인즉슨 '너무 세게치면 터져 방청소하기가 힘들어지기 때
문'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수십년간 외로이 벌레와의
투쟁을 벌여오시던 어머니는 조자룡을 얻은 유비와도 같이 뿌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신다. 그러면 나도 흐뭇해져 왼손에
는 파리채를 신나게 흔들고, 오른손에선 F-KILLER 를 뿌려대
며 살충을 계속한다.

며칠 전부터 쉰발이의 수가 부쩍 줄었다. '벌레와의 전쟁' 선
포 이후로 몰라보게 벌레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어머니는 다
내 덕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당신이 20여년간 말없이 나에게 보여주신 '실전을 통
한 가르침' 덕분이라는 것을.

2. 잔반(殘飯)처리
----------------------

전에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저 밥을 먹었다. 가끔씩은 억지
로 먹어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먹고싶은 만큼만 먹고
밥을 남겼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신다. 내가 봐도 그렇고 남이 봐도
그렇고 어머니조차 스스로 인정하신다. 특히 못만드시는 요리
는 김치였다. 각종 찌개류는 국과 구별이 잘 안갈 정도다. 나
는 종종 반찬핑계를 대고 밥을 반도 안먹고 그냥 남겨버렸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까지난 내가 먹고남은 밥이 어디로 가는
지, 먹다남은 반찬은 어디로 가고 매일같이 새 반찬이 나타나
는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그러던 몇개월 전
의 일이다.

저녁반찬으로 고기를 먹었다. 맛은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바
쁜 척하며 조금만 먹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남은 분량은 한사
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하루가 지났
다.

다음날, 저녁식사로 고기가 또 나왔다. 또먹어도 맛있는 게
고기 아닌가 ? 지글거리는 고기를 맛있게먹고 있자니 어머니
는 어제 먹다남은 고기를 먹고 계시는 것이다. 어제의 그 고
기가 남은 모양이었다. 아다시피 불고기는 한번 요리하고 나
서 다시 데우면 맛이 팍 간다. 느끼할 정도다. 배부른 소리라
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뎁힌 고기의 맛은.. 별로 맛이 없
다.

갑자기 목구멍에 고기가 걸렸다. 대관절 나는 누구이며 내 어
머니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나는 항상 뜨뜻한 요리만 먹고 어
머니는 내가 먹다남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

확~! 냄비안에 담긴 식어빠진 고기와 내가 먹던 따뜻한 고기
를 섞어버렸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꾸역꾸역 쌀
알을 씹어댔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어머니는 그런 내
행동을 보시곤 목이 매이시는 모양이다. 고기는 안먹고 자꾸
만 내 얼굴을 쳐다보신다. 그바람에 나까지 목구멍에서 따뜻
한 고기와 잘익은 쌀밥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꾸역꾸역 맛있는 듯 밀어넣었다. 그것은.. 아까 먹던 따뜻한
고기보다 더 쫄깃쫄깃했고 더 맛있었다.

요즘은 어머니가안계실 때면 냉장고를 뒤져 먹다남은 냉장된
반찬들의 일부를 고양이 밥그릇속에 몰래 던져넣는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그날만든
새반찬을 당신의 입속에 못 넣으실테니 말이다...

P.S) 광고말씀에도 이런 게 있다.
'좋은 밥을 만들 수는 없지만,
먹어드릴 수는 있어요 ! ' 라고.. (음 표절인가용 ?)

P.S) 덕분에 요즘 집고양이들은 거의 축제분위기다. 진짜 주
인인 어머니보다 밥잘주는 나를 오히려 더 따르는 경향이 있
어 어머니가 최근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




3. 방청소 (房淸掃)
-----------------------

어릴 적, 어질러놓고 자주 뭔가 쏟고 한 덕분에 많이 맞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고생한 건 그걸 다 치워야했던 어머니셨다.
난 어머니위에 올라타고선 '이랴~가자~!' 하고 말타는 시늉을
했었고, 어머니는 내 장난을 군말없이 받아주셨다. 비록 체중
25 KG 내외의 일곱살 어린 소년이었지만 좀 무거웠으리 ?

나도 가끔씩 (아주 가끔이지만) 청소할 때면 무릎이 아파옴을
느끼는데, 가끔씩이지만 나까지 업고 청소를 하셨다는 걸 생
각하면 가슴이 무지하게 아파온다.

요즘도 청소만은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다. 다른 건 어지간해
선 믿는데 내가 하는 청소를 못믿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보단 많이 속도도 느려지셨고, 힘도 더 들어하시는 것 같다.
약간의 결벽증을 동반한 수고로움이기 때문에 내가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머니에겐 찝찝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청소에
있어서만은 양보 (?)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어머니가 힘들어 내가 청소할 때는 체중 65 kG
의 어머니가 내 위에 올라타고 '이랴~가자~!' 를 하실 때도
있으니... 이제서야 좀 가슴이 덜 아픈 것 같다.

4. 운전
------------

환갑을 얼마 남기지 않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는
오너드라이버이다. 눈이 좀 가물거린다는 점이 밤운전을 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10년 무사고경력
을 지닌 베스트 드라이버 (?) 이시다.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고향읍내 시골길만 운전하다보니
대구시내에서 운전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엄청 쪼신다 (?좀
이상하네요 쪼신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대구시내의 한
정된 길만을 다닐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지하철 개통' 이라
고 말한다.

어머니가 가끔씩 "국아,오늘은 어디어디어디에도 가봤다." 라
고 하시는 날엔 기쁜 얼굴로 답해드린다. " 우앙~! 어머니,
지하철 5호선을 드디어 개통하셨군요 !! "

차 한대로 어머니랑 내가 같이 쓰려니 가끔씩은 둘중 하나가
PONY2 픽업 (2인승) 이나 직행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가야 하
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아쉽게도 시골이라 시내버스나 택시가
변변찮은 까닭에 자가용은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가 양보를 하셨다. 어머니는
내 약속에 차질이라도 생길까봐 당신이 항상 대중교통수단이
나 픽업을 이용하신다. 덕분에 난 어머니가 양보하신 흰색 엑
센트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
실까 ? 차와 내몸은 부산사직야구장 한구석에 있어도 마음만
은 언제나 어머니 가슴속에들어가 있다는 것을 ?

5. 수술 (手術)
--------------------

며칠 후면 어머니가 간단한 수술을 하신다. (적어도 어머니의
말로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것이다) 일전에 병을 얻으셨
을 적에도 어머니는 '간단한' 검사를 받으러 서울로 간다고
하셨지. 다행히 결과가 좋아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살아계시
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날더러 서울로 올라오지 말라고 하신다.
혼자 병원수속부터 수술 및 퇴원까지 당신이 할 수 있으니 하
루라도 내게영어학원에 빠지지 말라고 부탁하신다.

난 안다. 그렇게 말하는 속에서도 어머니는 내가 하루라도 서
울 그 먼곳까지 가서 당신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
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확신한다. 어머니는 또한번의 고비
를 무사히 넘기실 것이며 또한 그시간이면 나는 영어학원에서
297 KM 떨어진 잠실 중앙병원 - 어머니곁 - 에 가있는 착한
아들이 되어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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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 들어가며 -


" 나..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
" ..너 힘들어서 안돼! "
" 그래도 너 없을 때 그 아일 보면 좋을 것 같아. "
" ...... "

안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일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드디어 2살박이
딸이 하나 생겼다. 새 둥지로 이사오던 날, 시장 봐오는 나를 흘끔거리
며 졸졸 따라오는 꾀죄죄한 요키녀석을 이게 웬떡인가 싶어 냉큼 안아
들고 동거에 들어간지 넉달째다.
그와 나는 '말하자면' 신혼부부이다. 아니 학생부부이다. 신혼부부라면
아이 기다리는건 당연한 일일텐데 무슨 소리냐고의아해 하는 분이 계
실까? 우린 법적으로는 명백하게 '처녀', '총각'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이렇게 뻔뻔하도록 당당한 모습으로 글까지 쓰
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주위의 성원(?)에 힘입어 그와의 보금자리를
꾸민지도 다음달이면 꼭 일년이 된다. '오늘은 뭘 해먹으면 맛있었다고
소문이 날까'를 걱정하며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고, 그의 속옷을 챙기고
셔츠를 다림질하고, 월말에 낼 세금을 계산하고 가계부를 쓴다. 아직
방학중이라 개강까지 조금은 여유롭지만, 우린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주말이 와야만 온전한 나만의 그를 만나게 된다.








" 너 국민학교 6학년때 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히히 "

가끔 그를 놀릴 때 하는 말이다. 올해로 나는 스물다섯, 그는 스물둘이
다. 친구들이 학사모를 쓰고 카메라앞에서 폼을 잡을때 나는 철이 든건
지 노망이 난건지 늙다리 새내기가 되었다. 그가 과대표를 맡아 열심히
뛰어다닐 때 난 같은 과의 형과 사귀느라 학교생활은 뒷전이었다. 나중
에야 알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
었다고 한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학교가 총파업에 들어갔을 즈음, 사귀던
형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에 간 나는 새삼스럽게도 투쟁중인 그를 보게 되었다. 어리지만 사려깊
은 행동과 마음씀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게 됐다. 하루의 일과는 호프집
으로 이어졌다. CC였을 때 과동기들에게 깎인 점수를 만회하려는 듯 난
기꺼이 '간빠이'를 외쳤고, 그도 한잔 술로 하루의 피곤함을 씻으려는
듯 퍼부어 댔다.

한잔 술에 눈이 맞고 두잔 술에 정이 든다던가. 사람들은 우리를 '술CC'
라 불렀고, 어느덧 우린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우리집 요주의대상 1호였
다. 그를 만나면서부터 나의 귀가는 자정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와 동
시에 이루어졌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통화로 부모님의 눈총을 받고 있
었다. 그 날은 그가 취한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었다.

" 저기.. 아버지 아니시냐? "
" ..어? "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 했다. 뒷머리를 잡고 주춤하는 그와 검붉
게 물든 그의 하얀 셔츠, 휘청이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져 갔다.


딸자식 걱정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딸자식이 술에 취한 것도 모자라
외간남자의 부축을 받고 있는 것에 화를 참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그가
누군지를 알아차린 아버지는 이내 가지고 나온 휴대용 후레쉬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셨다. 그 날 일은 두번 다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엄마 아빤 아무렇지
도 않으세요? "
" 사람이나 짐승이나 말안듣는 것들은 다 맞아야 정신차리는 법이다! "
" 고소하라고 그럴꺼예요. 이건 살인미수라구요! "
" 잔소리 말고, 학교나 때려치워!. "

자퇴와 휴학 중 하나를 택하라는 부모님과 그러면 집을 나가겠다며 맞
서던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2학기 등록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부모님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그를 향
하는 나의 마음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막내동생과 함께 외출을 당했고, 백화점에서 접선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다니는 것을 엄마의 친구분이 보셨고, 여전히 서로 만난다는 사실
이 부모님께 알려졌다.

" 그 아이는 안 된다. 한두살 차이도 아니고.. "
"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엄마는 아빠하고 일곱살 차이잖아요! "
" 남자하고 여자하고는 달라. 아무튼 그 아이는 내가 용납 못한다! "

생각보다 완강한 부모님께 못이기는 척 정리하고 오겠다며 강릉으로
향했던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물론 그와 함께였다.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입을 맞췄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
국 들통나고 말았지만 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집안의 맏딸로써
책임이 막중함을 알지만 내게는 그가 더없이 소중했다. 살림밑천이라
고 좋아하셨다던 부모님은 24년동안 당신 말씀 거역하는 것 없이고분
고분하던 큰딸이 당신의 기대를 져 버렸다고 분통을 참지 못하셨다.

" 그래, 할게 없어 네 동생보다도 더 어린놈한테 미쳐 있냐! "
" ...... "
"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난 좀 이겨 봐야겠다! "

여름이 지나고 개강을 했다. 새벽같이 나와서 12시 땡치면 집에 들어
가는 일과 부모님과 나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계속 되었다. 그럴
수록 그와의 사랑은 커져만 갔다.
그의 부모님은 당신의 외아들과 매일같이 통화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
을 알고 계셨고, 내 나이가 많았어도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눈치였다.
만일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아셨다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하
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일단 덮어
두기로 했다.




" 아버지 말을 듣겠냐, 아니면 네 마음대로 할꺼냐? "
" ...... "
" 그 아이와는 헤어지고 학교도 그만둬라. "
" 못 그러겠다면요. "
" 그러면 내 눈앞에서 없어져 버려! "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나는 대충 입을 옷가지와 책을 챙겨서 24년
동안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다리
고 있던 그의 품안으로 뛰어 들었다.
사정을 들은 그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젊
은 혈기에 잘못 생각한 거라며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셨다. 말은 하
지 않았어도 당신의 유일한 혈육이니 받아주실 것이라 믿었던 그 역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도 나와 같은 길을 택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방을 구했고, 엄마 생신날 남대문시장에 살림살이를 사러
나갔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워야 할 날을 난 일부러 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살아생전에도 다하지 못 한다고 했는데,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큰지 헤아려 보면
그 안타까움은 가슴속에서 녹아 버리고 만다.


" 야~ 우리과에 그 '이해 안 되는 커플' 말고 또 잘되는 커플 없냐? "

우리의 용감무쌍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우리
에게 하는 소리다. 자칭 신세대라는 친구들도 이런 말을 하는데 기성
세대인 우리 부모님들께는 조금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여유로
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집 나와 생활한지 일년만에 이젠 나름대로 생
활에 리듬이 생겨서인가 보다.


아버지는 자식이기는 부모가 되겠다고 하셨다. 물론 홧김에 그러셨다
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물론 간
간이 소식을 듣긴 하지만 집 나올 때의 그 용감함은 어디로 가버렸는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패배'를 인정하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입버릇대로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고 하셨으니까..








- 나가며 -

그는 스물둘의 외아들, 나는 스물다섯의 맏딸.
우린 그렇게 만났다. 혈연의 매듭을 끊고, 혈연의 정과 책임도 져버리
고 야반도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사는 지금, 남녀가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은 동화속 환상도 아니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교
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이며 생활이란 걸 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방법의 차이일뿐 나쁜 짓은 아니지 않은가.

스물둘의 그는 트럭 운전을 했다. 지난 학기 내 등록금을 벌려고 아침
부터 저녁까지 운전대를 잡았었다. 그의 보드라운 손바닥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혔고, 다소 앙상한 그의 팔뚝엔 울퉁불퉁 근육이 생겼다.
지금, 그는 주유소에서 밤샘을 한다. 낮에 일하는 것보다 피곤하고,
그 좋아하는 소주 한잔이 아쉽다고 하지만 더 '짭짤하다'고 좋아한다.
내가 퇴근할 때 출근하는 그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고단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다가 속상한 마음에 떨어지는 내 눈물방
울로 그는 부스스 잠에서 깬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출근한다며 웃어
넘기는 그의 뒷모습에 잘 다녀오라는 인사로 울음을 삼킨다. 피곤에
지치고 땀에 절은 몸이라도 눈가의 웃음만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의 매력이기도 하다. 웃을 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그의 나이를 가늠
키 어렵게 한다.

내년 삼월이면 스물셋이 되는 그는 아끼던 머리를 빡빡 깎고 현역으로
입대를 한다. 3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돌아
올 그는 나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고의 나날들, 나에
대한 그의 배려인 듯 하다. 나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 하지만 죽을
때까지만 같이 살자고 해줬으면 좋겠다. 까짓 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번씩만 바뀌고 나면 평생을 서로 기대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언제든, 어디서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왔던 알라딘의 램프요정같은 그.
그래서 그의 부재(不在)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제 서서히 그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없을때 새록새록 꺼내 볼 추억거리를 만들어야겠다.
내 사랑이 얼만큼인지 알기 쉽게 보여줘야겠다.
50년 아니라 500년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겠다.
날 잊어버리지도 잃어버리지도 않도록 그의 가슴 깊이 새겨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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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일기장

남쪽 길가를 내다보는 창이 맑게 보이는 누나의 책상은 누나가 떠난 뒤에도 항상 깨끗합니다.

가끔 엄마가 누나 방을 치워 준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외엔 아무도 이 방에 얼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냥 싸늘하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누나가 쓰던 휠체어는 방 구석에 놓여있습니다.

달력 옆에는 전에 누나가 사서 걸어 놓은 장미꽃 몇송이가 마른 꽃잎을 아슬 아슬하게 벽에 기대고 있습니다.

별 내용도 없는 누나의 일기장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나는 어릴 때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게다가 허약한 몸 때문에 여러가지 병에 시달렸습니다.

항상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동생인 나에게 미소를 잊지 않았구요.

죽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면 다 마찬가지이지만 누나는 삶을 자각할 때부터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비극이 있었던 것인가 봅니다.

아무튼 난 며칠 전부터 누나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방에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엄마하고 가끔 공원에 가거나 하는 일 외에는 거의 종일을 집에 있는 누나의 일기장은 내가 생각 했던 것처럼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냥 죽은 누나의 체취가 어려있는 방에 잠깐잠깐 들어와서, 침대에 한 번 누워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했습니다.

워낙 누나는 말도 없고 또 집에서 죽은 듯이 살던 사람이어서, 이 세상에서 떠난지 한달이 넘은 지금도 난 누나가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레서 가끔 방을 어정대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우연히 누나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읽게 됫습니다.

다섯권의 일기장을 누나의 책꽂이 한 구석에서 찾아내고, 그리고 이제 세권째 읽고 있습니다.

누나는 워낙 일상이 단조로왔나 봅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들,아무렇지도 않게 뜨고 지는 해와 달, 별, 하늘의 구름,,

누나는 가끔씩 하늘의 색이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대해서 한페이지 이상 쓴 적도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누나같이 지루한 삶은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이 그처럼 많은 색을 가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구름과 바람과 별 그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비록 좁은 남쪽 창을 통해서이지만, 난 세권째 일기장을 읽으면서 우연히 그 다섯권의 일기장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누나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세권째 일기장까지 누나는 그 두꺼운 일기장의 끝까지 쓰지 못 했습니다.

삼분지 이 쯤 쓰다가는 그만 모두 허연 백지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일기장에 새로운 날짜들을 적어가고.. 하는 식입니다.

누나의 삶의 단위는 그렇게 두꺼운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갈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롭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하긴 남쪽 창을 통해서 시작하고 끝맺는 하루하루를,,

글쎄요.. 그 일기장에 다 채울려면 지겹고.. 어쩌면 누나는 새로운 일기장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날들을 소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건 누나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새로운 날을 소망하지 않으면 아마 누나의 그 좁은 방, 좁은 창으로 보이는 하루하루가 엄청나게 지루했겠지요..

누나는 가끔씩 일기장 구석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참새들, 뜨는 해들, 전기줄,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푸념같은.. 걷지 못하는,남들처럼 건강을 가지지 못한 자의 신음같은 이야기들..

누나는 생전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누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누나 대신에 엄마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끔 누나는 엄마가 누나 때문에 울던 날에 자주 쓰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년 ##월 $$일 날씨 ..그래도 하늘은 나에게 밝은 태양을..

고통받은 자들은 고통을 소리 높이 외쳐야 하는건지... 난 오늘
도 남쪽 작은 창에서 세상을 소망하며,상상하며,참새때들이 간간
히 날아가며 해주는 이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애쓰며 지냈다.
눈물을 흘리는 것,슬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인간 뿐이라면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슬프다는 표현을 눈물 아닌 어떤 것으로 할까..
저 하늘도,아침과 저녁에 빛이 다르듯이 어쩌면 순간순간 슬픔의
빛으로 나에게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왜 인간은 슬픔을 슬픔처
럼,고통처럼 울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오늘도 날 목욕시
켜주고 나서 왜 울었다.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엄마는 울먹이
는 소리로 또 같은 말을 했다. 왜 나는 아무런 슬픈 표정을 보이
지 않냐고. 엄마는 나보고 한번쯤은 울어보기라도, 아픈 다리로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를 싸안고 온 세상을 향해 한번 울어보기라
도 하라고 한다. 엄마는 내 창백한 웃음이 보기 싫다고 하신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이 보기 흉한 두다리로 울어왔는데..더
이상 울어볼려고 해도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모르는 나를 엄마는
알까.. 오늘도 새벽 해가 뜰 때 쯤이면 괴로운 청소 리어카를 끌
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좀 있으면 신문돌리는 아이
와..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 가는 사람들..그들은 모두
날 대신해서 울어주고 있는데..이 남쪽 창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
들은 세상이 날 위해 대신 울어주는 눈믈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아
니면..어쩌면..나에게 이 남쪽 창이 없었으면 내 몸에 있는 것들
이 다 나의 눈물로 빠져나갔으리라. 몇일 밤을 새워도 다 흘리지
못할 눈물로..인간에게 이처럼 많은 눈물이 있을까 하고 생각 할
만큼 내 속에 많은 눈물이 있지만 난 남쪽 창에서 보는 모든 것들
로 인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있다. 엄마는 날 언제나
이해해줄까...


누나에게 이 남쪽 창은 정말 소중했던 것일까...

그래서 누나는 겨울에도 이 남쪽 창을 비닐로 봉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것인가봅니다.

책상에 팔을 괴고 있으면 길건너 아파트가 보이고.. 그리고 저녁이되면 불들이 하나 둘 켜집니다.

누군가가, 또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세상은, 저 아파트 불빛 처럼 많은 눈물들일까요..?


****년 &&월 ##일

날씨 -- 도시의 오염된 공기가 아무리 탁해도 뜨는 해를 막을
수는 없다..나는 이 남쪽 창을 통해 배운다. --

이 창, 2층 높이니까 바닥까지 한 5미터 정도 되려나.. 일전에
뿌린 채송화씨가 싹이 텄다. 이 높은 곳에서 그냥 무심하게 떨어
뜨렸는데도 채송화씨는 보도블럭 구석 그 조그마한 흙 틈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남쪽 창에 또 한 식구가 느는 샘이
다. 채송화를 보며 난 그 채송화가 여기 2층 방 창문까지 자랄 수
도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소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헛된 소망...
소망... 아무도 나의 소망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누군가
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처럼 수많은
눈물들이 인간에게 허락된 것처럼 그만큼의 소망도 허락되지 않았
을까..?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그러나
아주 가까운 곳에 나의 소망이 있더라도 난 이 남쪽 창에 가득한
눈물과 항상 함께 해야하는가보다.
오늘, 그냥 무덤덤한 마음으로 채송화 꽃에게 바라는 것은...
그 많은 씨들,어쩌면 싹도 피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 많은
씨들에게,,엄마 채송화는 하나하나 각기 다른 소망들을 품게 해
주었으면..보도블럭 구석에 뿌리를 내리는 채송화지만 겨울이 지
나면 죽어버린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 많은 씨앗이 소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새삼 가슴아픈 눈물처럼 다가온다..

내년에도 또 채송화 씨를 뿌려야겠다....


내년 봄에는 이사를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나의 방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엄마도 더 이상 자꾸 죽은 누나를 생각나게 하는 이 방이견디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한때는 누나의 존재 자체는 우리 집의 슬픔 덩어리였지만 죽고 나서 엄마는 더 누나를 생각하는게 당연한거지요.

사람이란 그런거지요..그렇습니다.

누나는 일기장에 남쪽 창으로 보이는 그 모든 눈물들을 감당하고 살았는데 나는, 엄마는 그 남쪽 창보다 더 넓은 세상을 항상 대하고 있는데,, 슬픔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또 새로운 슬픔으로 변하는 것이야.. 하늘 색이 수시로 변하는 것과 같겠지요.

누나는 새로운 채송화씨를 뿌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참 아쉬움입니다.

아니, 누나가 새로운 채송화씨를 뿌렸다면 누나는 이 세상에 새로운 눈물을 한방울 더 만든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나의 말에 의하면..


****년 &&월 ##일

날씨 -- 오히려 비는 이 세상의 눈물을 감추어 준다. 흘러 내
리는 모든 것들을 체념하게 한다. 하지만 아니야,,아니다..정말
아니다.. 내 남쪽 창에서 그 나름대로의 배역을 항상 맡고 있는
저 태양과 구름과,,아파트 불빛, 그 안에 사는 외롭고 즐거운 사
람들..또 아스팔트 길,멀리 보이는 공중전화 박스..그리고 지나가
는 모든 사람들,,사람들,,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연극은 모두 비극
이다. 비극..지금 비의 커튼이 잠시 막과 막 사이의 휴식을 주고
있지만..또 다시 시작되는 비극은 그 자체가 슬픈 눈물이다. 사람
들은 비를 보며 눈물을 생각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이 비극의 뜻을
알게 된다면,,왜 주인공이 마지막에 슬픈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그들은 눈물을 보면서 비를 생각하게 되겠지..
오늘은 남쪽 창이 비때문에 가렸다...엄마의 눈물이 생각난
다...채송화는 비를 맞고 있겠지.. 이 비극의 세상에 또 너는 무
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어쩌면 너는 무대 뒤에서 혼자 울어대기
만 하는 뜨내기 연극배우가 아닌지..해가 가면 또다시 씨를 뿌리
며 언젠가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함께 엉엉 울어보기만을 기대
하는,,그런 삼류 뜨내기 배우..꽃술 가득히 이제는 씨를 품어 무
거운 허리를 지탱하기에 힘들기만 한 네 모습이 나를 원망하는 것
만 같구나..그래 난 너의 눈물을 아니까..난 네가 무대 뒤에서 울
어도 따라 울수 있으니까..너의 씨가 이 땅 어디엔가 가서 퍼져..
또 그렇게 울어도 그 울음을 다 울어줄 수 있을거야..사랑하는 내
채송화..


난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누나의 방에 들어가서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누나는 떠났지만 그 슬픔이 베어있는 누나의 일기장을 볼 때마다,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곤 했습니다.

나도 누나처럼 남쪽 창을 통해 세상이 인간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눈물에 젖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누나의 남쪽 창은,가끔 초겨울 바람에 너무 차게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 슬픔을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나의 일기장은 너무 슬프기만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렇게 세상의 눈물만을 보며 살아가기는 너무나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나의 일기장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난 그게 참 안타까왔습니다.

그리고 좀 이상했습니다.

난 누나의 그런 슬픔 뒤에는 꼭 그 슬픔 만큼의 소망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그런 소망이 없다면..누나는 일기를 쓰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기는 소망을 가진 자만이 쓰는 건데..그래서 어쩌면 누나는 인내로,끈기로 일기를 써내려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매번 그 슬픔에 지쳐,소망 없는 슬픔에 지쳐 일기장을 다 쓰지 못하고 백지를 남길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난 네번째 일기장을 읽었습니다.

또 반쯤 가서 백지가 나왔습니다.

백지들을 몇장 넘겨보다가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섯번째 일기장을 볼까 하다가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그정도의 슬픔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사가는 날까지는 충분히 다섯번째 일기장도 다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섯번째는 아마 반도 안썼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난 그 누나의 마지막 일기장에서 이제는 희망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내 마음 안에서 누나의 형상이,,비록 지금은 죽었지만 슬픔으로만 아로 새겨진다는 것은..참 가슴아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창백한 미소와 함께,,슬픔..너무나 슬프게 살아왔던 슬픔..

하지만 그에 비해서 난 누나의 눈물을 한번도 볼 수 없었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더욱 더 마음 속에서 지워질 수가 없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누나의 다섯번째 일기장까지 다 읽고 나면,, 봄이 되고 새 집에 이사가면 보도블럭 틈에라도 싹이 나게 채송화씨를 뿌리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건 감기보다,, 이 세상 어느 질병보다 더 지독한.. 슬픔의 병이니까요..

그건 누나의 일기장에서 나온 말이였습니다.

슬픔의 병..


****년 &&월 ##일 날씨 -- ...

요즘은 밤새 깨어있는 날이 많아졌다. 고통이 너무 심해졌다.
숨이 가끔 가빠오기는 하지만..그래도 누워있다가 가끔씩 이렇게
남쪽 창을 대하는 것이 고통보다는 만족한 슬픔이다.
의사는 진찰을 하고,,또 약을 주고..그 하얀 봉지에 든 약을 통
해 사람들은 슬픔의 병을 옮기고 다닌다.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그약을 먹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슬픔의 병에
걸려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약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남쪽 창은 언제나 슬프다. 오히려 그 하얀 약 때문에,,모든 병
을 고쳐줄 것 같은 약 때문에 언제나 좌절하고 실망한다.
하지만 난 또 약을 먹었다. 이제는 너무 무미하고 무의미하다.
슬픔을 이길 것은..소망..희망...난 언제나 다다를 것 같이 새로
운 소망을 가지고 또 시작하고..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것은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약을 먹고 치료되지 않은 병,그 슬픔
의 병일바에야..그냥 놔두는 것이..그레..좋겠지..


누나의 일기장에서 그나마 희망에 관한 말이 있는 것은 이 일기 뿐이였습니다.

그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누나가 지금까지 적어 온 슬픔의 깊이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고..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여겨집니다.

난 다섯번째 일기장도 반도 안되서 백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만 책꽂이에 넣어버렸습니다.

며칠 후에는 이사를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누나의 책상,, 책꽂이,, 그리고 휠체어도,, 모두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봄에는..봄에는 새로운 채송화씨를 뿌려야 하니까요.. 비록 누나는 누나의 삶과 죽음 처럼 일기장도 아무런 희망이 없이 슬픔만 주고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제는 누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까닭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쪽 창을 보면서 눈물에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아파트 불빛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나는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짐을 차에 옮기고.. 워낙 단촐한 식구라.. 누나 때문에 그나마 넓은 2층집에 살았지만 이제는 좀 아늑한 곳으로 옮기고,, 그리고 누나의 슬픔이 씻겨진 곳으로 간다는게 한편으론 편하기도 했습니다.

누나가 보던 책들은 다 팔아버린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밖에는 벌써 고물장수가 좋은 벌이가 생겼다고 와 있었습니다.

책들을 노끈으로 묶어 정리했습니다.

시집과,, 그리고 소설책들..

난 마지막으로,, 누나의 일기장까지 묶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비록 끝까지 쓰지 못한 일기장 이였지만,, 하지만 슬픔만 남을 것이라면 그냥 떠나가게 하는 것이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쌓아놓았던 마지막 책 더미 위에 일기장 다섯권을 올려 놓으니 노끈이 좀 모자랐습니다.

노끈을 가지러 가다가 그만 책 더미를 건드려 책이 쓰러졌습니다.

그통에 맨 위에 있던 누나의 일기장이 방바닥에 떨어지며 다섯번째 일기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 졌습니다.

낯익은 누나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난 그때까지 누나의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간마다 가서 끝나는 누나의 일기장은 나에게 누나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누나가 무언가를 써 놓았으리라는 생각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난 방 바닥에 앉아 그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일기장에게..

또 다시 남쪽 창을 보며 일기를 쓴다. 사랑하는 내 일기장.. 매
번 일기를 쓸 때마다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쓰고 시작하는데..일
년이 삼백 육십 다섯날이고,,이 일기장이 두꺼워야 삼백장도 못되
는데..내 소망은 그 삼백 날을 가지 못하고 그만 쓰러져 버린다.
또 다시 일기를 쓰면서..난 새롭게 소망을 한다. 내 사랑하는 일
기장..너만 알고 있으리라 믿어. 넌 나와 함께 이 남쪽 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니까.. 지금은 네가 이 습기찬 책꽂이 구석에
있지만..내 몸이 건강해 지는 날에는 어디 좋은 곳에 있을거야.
세계일주를 너와 같이 할 수도 있고 저 멀리 보이는,,,남쪽 창에
서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너와 함께 갈께.. 너는,,그냥..네 하얀
마음으로 나의 눈물을 받아주기만 하면돼. 그냥,,이 마지막장에
내가 말하는 소망을,,내 몸에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내 소망을
못들은 척 간직하고 있다가..그냥 내가 세상을 보며 흘리는 눈물
을 그냥 받아주기만 하면돼..난 지금 이때밖에 눈물을 흘릴 수
없단다..내 일기장아..난 남쪽 창을 보며 세상이 흘리는 눈물을
생각하지만, 너의 마지막 장을 대하면서 나는 이제 내가 매일 남
쪽 창을 통해 보는 세상처럼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거든..세상은
지금 남쪽 창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있어.
사랑하는 내 일기장..내가 너에게만 나의 소망을 말하는 것은,,
나의 소망 때문에 또 다른 더 많은 슬픔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
이야.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은
거,,너도 알고 있지..그렇지.? 하지만 그들도..그 소망 때문에..
슬퍼질 수 밖에 없는걸 어떻게..매번 나는 일기를 쓰면서 마지막
장에만 곱게 적어둔 내 소망을 다시 볼까 두려워서 끝까지 쓰지
못하고 널 책꽂이게 꽂아두지만..또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소망으
로 시작하지 않으면 난 이 조그마한 남쪽 창을 통해 보는
슬픔조차 견딜 수가 없는걸..
사랑하는 내 일기장..이제 또 다시 너와 같이 남쪽 창을 보게
되었어. 미안해..너까지 슬프게 하려는 것은 아닌데..너는 꼭 내
소망까지 간직해줘..사랑하는 내 일기장..


군데군데 누나의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글자가 있었습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다른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도 펼져 보았습니다.

모든 일기장이 마지막 페이지를 같은 글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누나의 소망은 너무 상처받기 쉬워서 그렇게 마지막에 감추어 두지 않으면 금방 상처받 아 사그라들었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난 왜 그때까지 누나가 마음의 상처받기 쉬운 소망을 일기장 마지막에 숨겨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삶의 소망들이 이미 상처받았기 때문에 난 누나의 소망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어쩌면 누나처럼 순결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누나처럼 깊은 슬픔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일까요..

난 누나의 일기장을 가슴에 꼬옥 품었습니다.

누나의 소망까지 품었습니다.

남쪽 창 너머로 세상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있던 그날은 이사가는 날, 늦겨울 오후였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고..난 채송화씨를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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