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레잡기 (殺蟲)
----------------------
우리집은 외딴 시골이기 때문에 언제나 각종 벌레들로 온 집
안이 들끓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벌레를 못들어오게 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살충유택(殺蟲有擇) 이 불가피(不可避) 하
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놈의 징그러운 벌레들을 잘 잡
아오셨다. 거대한 바퀴도, 발이 오십개가 넘는 쉰발이도, 각
종 해충(害蟲) 들을 어머니는 매일같이 섬멸(殲滅) 해 오셨
다.
어릴 적, 나는 이런 어머니를 보며 "더럽게 벌레는 뭐하러 잡
으세요 !" 하고 오히려 화를 내곤 했었다. 내생각은 어차피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올 벌레를 그렇게 잡는 건 벌레에게 너무
가혹(苛酷)한 일이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잠자코 뽀삐휴지 (35m) 두 칸을 떼내어 손을
먼저 닦으신 후 다리와 몸통과 머리가 제각기 헝클어져 산재
(散在) 된 벌레의 잔해(殘骸)들을 조심스럽게 주워담으셨다.
그러면 나는 괜히 돕지도 못하고 말만 한 데 대해 미안해져서
또 한마디 한다.
"그깟 휴지좀 아껴쓰지 말고 팍팍 쓰세요. 바퀴벌레 터진 국
물 손에 다 묻잖아요. 나중에 제가 크면 돈벌어 휴지 한 박스
사드릴께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냥 싱긋 웃으시며 "이제 다 됐다." 하시면
서 남은 벌레건데기와 국물을 휴지의 뒷면으로 깨끗이 닦아낸
후 쓰레기통에 넣으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벌레를 발견하게 되면 그냥 못
본 척 지나쳐왔고, 지나가시던 어머니가 행여나 발견이라도
하시는 날엔 기껏해야 F-KILLER 라도 뿌리는 시늉을 했다. 물
론 죽은 뒤에도 휴지는 보통 10칸정도 떼내서 확인사살 같은
건 하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중에 살아나거나
말거나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집안을 돌아다니는 각종 벌레수가 급격히 증가하
기 시작했다. 그동안 방생(放生)했거나 일부러 죽이지 않고
놔두었던 벌레들이 알을 까고 새끼를 배출(倍出)해 내기 시작
한 모양이다. 특히 그 수가 많아진 벌레는 내가 가장 손대기
싫어했던 '쉰발이'였다.
부끄럽게도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어머니가 벌레를 원래부터
무서워하시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 오히려 손으로 벌레를
잡는 어머니를 보고 야만스럽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
나 결혼 후 시골에서 삼십여년 간 생활해 오시면서 스스로 살
기좋은 환경을 조성(造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인해지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다리 오십개가 넘고 등이 시커멓게 번들번들한 그런
벌레를 손으로 잡는데 누가 싫지 않을까 ? 뒤늦게 반성의 마
음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 산재(散在) 된 각종 '벌레와
의 전쟁' 을 공동으로 선포하고, 어머니는 F-킬러와 휴지로,
또 나는 홈키퍼,파리채와 맨손으로 벌레들에 살육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이젠 어머니가 발견한 쉰발이를 내손으로 쳐 죽이기도 한다.
이젠 어머니가 맨손으로 치지 말라고 말리기 시작하셨다. 이
유인즉슨 '너무 세게치면 터져 방청소하기가 힘들어지기 때
문'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수십년간 외로이 벌레와의
투쟁을 벌여오시던 어머니는 조자룡을 얻은 유비와도 같이 뿌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신다. 그러면 나도 흐뭇해져 왼손에
는 파리채를 신나게 흔들고, 오른손에선 F-KILLER 를 뿌려대
며 살충을 계속한다.
며칠 전부터 쉰발이의 수가 부쩍 줄었다. '벌레와의 전쟁' 선
포 이후로 몰라보게 벌레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어머니는 다
내 덕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당신이 20여년간 말없이 나에게 보여주신 '실전을 통
한 가르침' 덕분이라는 것을.
2. 잔반(殘飯)처리
----------------------
전에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저 밥을 먹었다. 가끔씩은 억지
로 먹어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먹고싶은 만큼만 먹고
밥을 남겼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신다. 내가 봐도 그렇고 남이 봐도
그렇고 어머니조차 스스로 인정하신다. 특히 못만드시는 요리
는 김치였다. 각종 찌개류는 국과 구별이 잘 안갈 정도다. 나
는 종종 반찬핑계를 대고 밥을 반도 안먹고 그냥 남겨버렸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까지난 내가 먹고남은 밥이 어디로 가는
지, 먹다남은 반찬은 어디로 가고 매일같이 새 반찬이 나타나
는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그러던 몇개월 전
의 일이다.
저녁반찬으로 고기를 먹었다. 맛은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바
쁜 척하며 조금만 먹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남은 분량은 한사
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하루가 지났
다.
다음날, 저녁식사로 고기가 또 나왔다. 또먹어도 맛있는 게
고기 아닌가 ? 지글거리는 고기를 맛있게먹고 있자니 어머니
는 어제 먹다남은 고기를 먹고 계시는 것이다. 어제의 그 고
기가 남은 모양이었다. 아다시피 불고기는 한번 요리하고 나
서 다시 데우면 맛이 팍 간다. 느끼할 정도다. 배부른 소리라
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뎁힌 고기의 맛은.. 별로 맛이 없
다.
갑자기 목구멍에 고기가 걸렸다. 대관절 나는 누구이며 내 어
머니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나는 항상 뜨뜻한 요리만 먹고 어
머니는 내가 먹다남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
확~! 냄비안에 담긴 식어빠진 고기와 내가 먹던 따뜻한 고기
를 섞어버렸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꾸역꾸역 쌀
알을 씹어댔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어머니는 그런 내
행동을 보시곤 목이 매이시는 모양이다. 고기는 안먹고 자꾸
만 내 얼굴을 쳐다보신다. 그바람에 나까지 목구멍에서 따뜻
한 고기와 잘익은 쌀밥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꾸역꾸역 맛있는 듯 밀어넣었다. 그것은.. 아까 먹던 따뜻한
고기보다 더 쫄깃쫄깃했고 더 맛있었다.
요즘은 어머니가안계실 때면 냉장고를 뒤져 먹다남은 냉장된
반찬들의 일부를 고양이 밥그릇속에 몰래 던져넣는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그날만든
새반찬을 당신의 입속에 못 넣으실테니 말이다...
P.S) 광고말씀에도 이런 게 있다.
'좋은 밥을 만들 수는 없지만,
먹어드릴 수는 있어요 ! ' 라고.. (음 표절인가용 ?)
P.S) 덕분에 요즘 집고양이들은 거의 축제분위기다. 진짜 주
인인 어머니보다 밥잘주는 나를 오히려 더 따르는 경향이 있
어 어머니가 최근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
3. 방청소 (房淸掃)
-----------------------
어릴 적, 어질러놓고 자주 뭔가 쏟고 한 덕분에 많이 맞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고생한 건 그걸 다 치워야했던 어머니셨다.
난 어머니위에 올라타고선 '이랴~가자~!' 하고 말타는 시늉을
했었고, 어머니는 내 장난을 군말없이 받아주셨다. 비록 체중
25 KG 내외의 일곱살 어린 소년이었지만 좀 무거웠으리 ?
나도 가끔씩 (아주 가끔이지만) 청소할 때면 무릎이 아파옴을
느끼는데, 가끔씩이지만 나까지 업고 청소를 하셨다는 걸 생
각하면 가슴이 무지하게 아파온다.
요즘도 청소만은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다. 다른 건 어지간해
선 믿는데 내가 하는 청소를 못믿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보단 많이 속도도 느려지셨고, 힘도 더 들어하시는 것 같다.
약간의 결벽증을 동반한 수고로움이기 때문에 내가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머니에겐 찝찝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청소에
있어서만은 양보 (?)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어머니가 힘들어 내가 청소할 때는 체중 65 kG
의 어머니가 내 위에 올라타고 '이랴~가자~!' 를 하실 때도
있으니... 이제서야 좀 가슴이 덜 아픈 것 같다.
4. 운전
------------
환갑을 얼마 남기지 않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는
오너드라이버이다. 눈이 좀 가물거린다는 점이 밤운전을 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10년 무사고경력
을 지닌 베스트 드라이버 (?) 이시다.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고향읍내 시골길만 운전하다보니
대구시내에서 운전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엄청 쪼신다 (?좀
이상하네요 쪼신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대구시내의 한
정된 길만을 다닐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지하철 개통' 이라
고 말한다.
어머니가 가끔씩 "국아,오늘은 어디어디어디에도 가봤다." 라
고 하시는 날엔 기쁜 얼굴로 답해드린다. " 우앙~! 어머니,
지하철 5호선을 드디어 개통하셨군요 !! "
차 한대로 어머니랑 내가 같이 쓰려니 가끔씩은 둘중 하나가
PONY2 픽업 (2인승) 이나 직행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가야 하
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아쉽게도 시골이라 시내버스나 택시가
변변찮은 까닭에 자가용은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가 양보를 하셨다. 어머니는
내 약속에 차질이라도 생길까봐 당신이 항상 대중교통수단이
나 픽업을 이용하신다. 덕분에 난 어머니가 양보하신 흰색 엑
센트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
실까 ? 차와 내몸은 부산사직야구장 한구석에 있어도 마음만
은 언제나 어머니 가슴속에들어가 있다는 것을 ?
5. 수술 (手術)
--------------------
며칠 후면 어머니가 간단한 수술을 하신다. (적어도 어머니의
말로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것이다) 일전에 병을 얻으셨
을 적에도 어머니는 '간단한' 검사를 받으러 서울로 간다고
하셨지. 다행히 결과가 좋아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살아계시
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날더러 서울로 올라오지 말라고 하신다.
혼자 병원수속부터 수술 및 퇴원까지 당신이 할 수 있으니 하
루라도 내게영어학원에 빠지지 말라고 부탁하신다.
난 안다. 그렇게 말하는 속에서도 어머니는 내가 하루라도 서
울 그 먼곳까지 가서 당신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
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확신한다. 어머니는 또한번의 고비
를 무사히 넘기실 것이며 또한 그시간이면 나는 영어학원에서
297 KM 떨어진 잠실 중앙병원 - 어머니곁 - 에 가있는 착한
아들이 되어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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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외딴 시골이기 때문에 언제나 각종 벌레들로 온 집
안이 들끓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벌레를 못들어오게 할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살충유택(殺蟲有擇) 이 불가피(不可避) 하
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놈의 징그러운 벌레들을 잘 잡
아오셨다. 거대한 바퀴도, 발이 오십개가 넘는 쉰발이도, 각
종 해충(害蟲) 들을 어머니는 매일같이 섬멸(殲滅) 해 오셨
다.
어릴 적, 나는 이런 어머니를 보며 "더럽게 벌레는 뭐하러 잡
으세요 !" 하고 오히려 화를 내곤 했었다. 내생각은 어차피
잡아도 잡아도 또 나올 벌레를 그렇게 잡는 건 벌레에게 너무
가혹(苛酷)한 일이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잠자코 뽀삐휴지 (35m) 두 칸을 떼내어 손을
먼저 닦으신 후 다리와 몸통과 머리가 제각기 헝클어져 산재
(散在) 된 벌레의 잔해(殘骸)들을 조심스럽게 주워담으셨다.
그러면 나는 괜히 돕지도 못하고 말만 한 데 대해 미안해져서
또 한마디 한다.
"그깟 휴지좀 아껴쓰지 말고 팍팍 쓰세요. 바퀴벌레 터진 국
물 손에 다 묻잖아요. 나중에 제가 크면 돈벌어 휴지 한 박스
사드릴께요~!"
그러면 어머니는 그냥 싱긋 웃으시며 "이제 다 됐다." 하시면
서 남은 벌레건데기와 국물을 휴지의 뒷면으로 깨끗이 닦아낸
후 쓰레기통에 넣으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벌레를 발견하게 되면 그냥 못
본 척 지나쳐왔고, 지나가시던 어머니가 행여나 발견이라도
하시는 날엔 기껏해야 F-KILLER 라도 뿌리는 시늉을 했다. 물
론 죽은 뒤에도 휴지는 보통 10칸정도 떼내서 확인사살 같은
건 하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중에 살아나거나
말거나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집안을 돌아다니는 각종 벌레수가 급격히 증가하
기 시작했다. 그동안 방생(放生)했거나 일부러 죽이지 않고
놔두었던 벌레들이 알을 까고 새끼를 배출(倍出)해 내기 시작
한 모양이다. 특히 그 수가 많아진 벌레는 내가 가장 손대기
싫어했던 '쉰발이'였다.
부끄럽게도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어머니가 벌레를 원래부터
무서워하시지 않은 줄 알았다. 아니, 오히려 손으로 벌레를
잡는 어머니를 보고 야만스럽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
나 결혼 후 시골에서 삼십여년 간 생활해 오시면서 스스로 살
기좋은 환경을 조성(造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인해지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다리 오십개가 넘고 등이 시커멓게 번들번들한 그런
벌레를 손으로 잡는데 누가 싫지 않을까 ? 뒤늦게 반성의 마
음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 산재(散在) 된 각종 '벌레와
의 전쟁' 을 공동으로 선포하고, 어머니는 F-킬러와 휴지로,
또 나는 홈키퍼,파리채와 맨손으로 벌레들에 살육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이젠 어머니가 발견한 쉰발이를 내손으로 쳐 죽이기도 한다.
이젠 어머니가 맨손으로 치지 말라고 말리기 시작하셨다. 이
유인즉슨 '너무 세게치면 터져 방청소하기가 힘들어지기 때
문'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수십년간 외로이 벌레와의
투쟁을 벌여오시던 어머니는 조자룡을 얻은 유비와도 같이 뿌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신다. 그러면 나도 흐뭇해져 왼손에
는 파리채를 신나게 흔들고, 오른손에선 F-KILLER 를 뿌려대
며 살충을 계속한다.
며칠 전부터 쉰발이의 수가 부쩍 줄었다. '벌레와의 전쟁' 선
포 이후로 몰라보게 벌레수가 줄어든 것을 보고 어머니는 다
내 덕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당신이 20여년간 말없이 나에게 보여주신 '실전을 통
한 가르침' 덕분이라는 것을.
2. 잔반(殘飯)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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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저 밥을 먹었다. 가끔씩은 억지
로 먹어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먹고싶은 만큼만 먹고
밥을 남겼다.
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신다. 내가 봐도 그렇고 남이 봐도
그렇고 어머니조차 스스로 인정하신다. 특히 못만드시는 요리
는 김치였다. 각종 찌개류는 국과 구별이 잘 안갈 정도다. 나
는 종종 반찬핑계를 대고 밥을 반도 안먹고 그냥 남겨버렸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까지난 내가 먹고남은 밥이 어디로 가는
지, 먹다남은 반찬은 어디로 가고 매일같이 새 반찬이 나타나
는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그러던 몇개월 전
의 일이다.
저녁반찬으로 고기를 먹었다. 맛은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바
쁜 척하며 조금만 먹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남은 분량은 한사
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하루가 지났
다.
다음날, 저녁식사로 고기가 또 나왔다. 또먹어도 맛있는 게
고기 아닌가 ? 지글거리는 고기를 맛있게먹고 있자니 어머니
는 어제 먹다남은 고기를 먹고 계시는 것이다. 어제의 그 고
기가 남은 모양이었다. 아다시피 불고기는 한번 요리하고 나
서 다시 데우면 맛이 팍 간다. 느끼할 정도다. 배부른 소리라
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뎁힌 고기의 맛은.. 별로 맛이 없
다.
갑자기 목구멍에 고기가 걸렸다. 대관절 나는 누구이며 내 어
머니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나는 항상 뜨뜻한 요리만 먹고 어
머니는 내가 먹다남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
확~! 냄비안에 담긴 식어빠진 고기와 내가 먹던 따뜻한 고기
를 섞어버렸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꾸역꾸역 쌀
알을 씹어댔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어머니는 그런 내
행동을 보시곤 목이 매이시는 모양이다. 고기는 안먹고 자꾸
만 내 얼굴을 쳐다보신다. 그바람에 나까지 목구멍에서 따뜻
한 고기와 잘익은 쌀밥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꾸역꾸역 맛있는 듯 밀어넣었다. 그것은.. 아까 먹던 따뜻한
고기보다 더 쫄깃쫄깃했고 더 맛있었다.
요즘은 어머니가안계실 때면 냉장고를 뒤져 먹다남은 냉장된
반찬들의 일부를 고양이 밥그릇속에 몰래 던져넣는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그날만든
새반찬을 당신의 입속에 못 넣으실테니 말이다...
P.S) 광고말씀에도 이런 게 있다.
'좋은 밥을 만들 수는 없지만,
먹어드릴 수는 있어요 ! ' 라고.. (음 표절인가용 ?)
P.S) 덕분에 요즘 집고양이들은 거의 축제분위기다. 진짜 주
인인 어머니보다 밥잘주는 나를 오히려 더 따르는 경향이 있
어 어머니가 최근 의아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
3. 방청소 (房淸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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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질러놓고 자주 뭔가 쏟고 한 덕분에 많이 맞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고생한 건 그걸 다 치워야했던 어머니셨다.
난 어머니위에 올라타고선 '이랴~가자~!' 하고 말타는 시늉을
했었고, 어머니는 내 장난을 군말없이 받아주셨다. 비록 체중
25 KG 내외의 일곱살 어린 소년이었지만 좀 무거웠으리 ?
나도 가끔씩 (아주 가끔이지만) 청소할 때면 무릎이 아파옴을
느끼는데, 가끔씩이지만 나까지 업고 청소를 하셨다는 걸 생
각하면 가슴이 무지하게 아파온다.
요즘도 청소만은 어머니가 자주 해주신다. 다른 건 어지간해
선 믿는데 내가 하는 청소를 못믿으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보단 많이 속도도 느려지셨고, 힘도 더 들어하시는 것 같다.
약간의 결벽증을 동반한 수고로움이기 때문에 내가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머니에겐 찝찝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청소에
있어서만은 양보 (?)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어머니가 힘들어 내가 청소할 때는 체중 65 kG
의 어머니가 내 위에 올라타고 '이랴~가자~!' 를 하실 때도
있으니... 이제서야 좀 가슴이 덜 아픈 것 같다.
4.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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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얼마 남기지 않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는
오너드라이버이다. 눈이 좀 가물거린다는 점이 밤운전을 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10년 무사고경력
을 지닌 베스트 드라이버 (?) 이시다.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고향읍내 시골길만 운전하다보니
대구시내에서 운전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엄청 쪼신다 (?좀
이상하네요 쪼신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대구시내의 한
정된 길만을 다닐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지하철 개통' 이라
고 말한다.
어머니가 가끔씩 "국아,오늘은 어디어디어디에도 가봤다." 라
고 하시는 날엔 기쁜 얼굴로 답해드린다. " 우앙~! 어머니,
지하철 5호선을 드디어 개통하셨군요 !! "
차 한대로 어머니랑 내가 같이 쓰려니 가끔씩은 둘중 하나가
PONY2 픽업 (2인승) 이나 직행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가야 하
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아쉽게도 시골이라 시내버스나 택시가
변변찮은 까닭에 자가용은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가 양보를 하셨다. 어머니는
내 약속에 차질이라도 생길까봐 당신이 항상 대중교통수단이
나 픽업을 이용하신다. 덕분에 난 어머니가 양보하신 흰색 엑
센트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
실까 ? 차와 내몸은 부산사직야구장 한구석에 있어도 마음만
은 언제나 어머니 가슴속에들어가 있다는 것을 ?
5. 수술 (手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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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어머니가 간단한 수술을 하신다. (적어도 어머니의
말로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것이다) 일전에 병을 얻으셨
을 적에도 어머니는 '간단한' 검사를 받으러 서울로 간다고
하셨지. 다행히 결과가 좋아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살아계시
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날더러 서울로 올라오지 말라고 하신다.
혼자 병원수속부터 수술 및 퇴원까지 당신이 할 수 있으니 하
루라도 내게영어학원에 빠지지 말라고 부탁하신다.
난 안다. 그렇게 말하는 속에서도 어머니는 내가 하루라도 서
울 그 먼곳까지 가서 당신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
신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확신한다. 어머니는 또한번의 고비
를 무사히 넘기실 것이며 또한 그시간이면 나는 영어학원에서
297 KM 떨어진 잠실 중앙병원 - 어머니곁 - 에 가있는 착한
아들이 되어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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