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현충사 정원의 벤치에는 초가을의 따스한 햇살이 한가롭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때 고요함을 깨뜨리며 어디선가 확자지껄한 소리가 밀려들더니 '효도관광'이란
플래카드를 허리띠처럼 두른 관광버스에서 노인들이 하나둘 내려서고 있었다. 대부분
칠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그 노인들 중에서 한 노부부가 걸음을 옮겨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쭈글쭈글한 피부, 검은 머리칼을 셀 수 있을 만큼 세어버린 은빛 백발. 할아버지의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아주는 할머니의 손이 갈퀴발처럼 거칠어 보였다.
"영감, 힘들지 않소?"
"나야 괜찮지만 몸도 편치않은 당신이 따라나선 게 걱정이지"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했다.
"내 걱정일랑 붙잡아 매시고 당신이나 오래 사슈"
할머니는 허리춤을 뒤적여 뭔가를 꺼내들며 말했다.
"자, 눈을 꼭 감고 입이나 크게 벌려 보슈"
"왜?"
"쪼꼬렛 주려고 그러우"
할아버지는 엄마 말 잘듣는 아이처럼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얇은
은박지가 잘 벗겨지지 않는지 할머니는 몇 번 헛손질을 한 뒤에야 겨우 알맹이를 꺼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할아버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쪼꼬렛이 아니잖아?"
"그렇수. 영감. 부디 나보다 오래 사시유"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입속에 넣어준 것은 우황청심환이었다. 할머니의 눈속에 정감이
빛나고 있었다.
<빈터를 보면 꽃씨를 심고 싶다> 권채경 엮음.
그때 고요함을 깨뜨리며 어디선가 확자지껄한 소리가 밀려들더니 '효도관광'이란
플래카드를 허리띠처럼 두른 관광버스에서 노인들이 하나둘 내려서고 있었다. 대부분
칠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그 노인들 중에서 한 노부부가 걸음을 옮겨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쭈글쭈글한 피부, 검은 머리칼을 셀 수 있을 만큼 세어버린 은빛 백발. 할아버지의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아주는 할머니의 손이 갈퀴발처럼 거칠어 보였다.
"영감, 힘들지 않소?"
"나야 괜찮지만 몸도 편치않은 당신이 따라나선 게 걱정이지"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했다.
"내 걱정일랑 붙잡아 매시고 당신이나 오래 사슈"
할머니는 허리춤을 뒤적여 뭔가를 꺼내들며 말했다.
"자, 눈을 꼭 감고 입이나 크게 벌려 보슈"
"왜?"
"쪼꼬렛 주려고 그러우"
할아버지는 엄마 말 잘듣는 아이처럼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얇은
은박지가 잘 벗겨지지 않는지 할머니는 몇 번 헛손질을 한 뒤에야 겨우 알맹이를 꺼낼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할아버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쪼꼬렛이 아니잖아?"
"그렇수. 영감. 부디 나보다 오래 사시유"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입속에 넣어준 것은 우황청심환이었다. 할머니의 눈속에 정감이
빛나고 있었다.
<빈터를 보면 꽃씨를 심고 싶다> 권채경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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