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실렸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어느 한 작은 산골마을입니다.
온 세상이 흰눈으로 덮인 깊은 한 겨울이었습니다.
그 날도 하늘이 흐리더니 부슬부슬 눈발이 날리는데, 이른 아침 초라한 상여 하나가 마을 어귀에서 뒷산을 향하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상여 뒤에는 9살 정도 된 사내아이와 7살 된 사내 아이, 둘이 허름한 상복을 입고 동네 사람들이 메고 나가는 그 상여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남은 식구라고는 이 아이 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작은아이가 아직 갓난 아기였을 때, 세상을 먼저 버린 아내를 원망하면서, 물려받은 재산도, 변변한 기술도 없지만 힘든 세상을 어떻게든 남은 아이들과 살아보려고 제대로 된 끼니조차 변변히 잇지 못하고 온갖 힘든 일을 마다 않고 하다가, 이제 아버지 마저 병을 얻어 이렇게 한 겨울에 쓰러지게 된 것입니다.
장례가 있고 나서 얼마동안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불쌍한 이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고운말 관계상 끼어듬> 마저 안 계신 이 집에서 한 겨울에 어린 아이 둘이 지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큰 이이가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농짝을 정리하다가 오래 되어 누렇게 변색된 편지 봉투 하나를 발견한 것이 그 때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남들처럼 집안에 ‘어머니’가 없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마다, 아직도 어린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죽고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늘 “네 어머니는 멀리 갔다”고만 말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이 아이들은 언젠가 멀리 간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지내던 터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이 편지 봉투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렸하게 어머니가 계신 곳의 주소도 적혀 있었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큰 아이는 몇 번이고 그 주소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늘 “멀리 갔다”고만 말씀하시던 그 어머니의 주소였습니다. 이 주소대로만 찾아가면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 겨울 어느 날, 어린 7살 짜리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주소가 기록된 편지 봉투를 손에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큰 아이는 며칠을 벼르다가, 어느 날 7살 짜리 남동생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온 세상은 하얗게 눈이 덮힌 깊은 한 겨울 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울 갈 때 늘 다니던 마을 앞길을 잘 보아두었습니다.
저 큰길 어딘가에 있을 서울만 찾아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소가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모처럼 햇볕이 든 날을 잡아 서울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편지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 총각 처녀 시절에 주고받던 연애 편지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후 아버지는 이 편지를 아내 보듯 소중하게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큰 아이가 알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멀리 가신” 어머니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는, 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느 만큼 걸었는지 작은아이가 보채기 시작합니다.
“형아야 다리 아프다. 쉬었다 가자!”
벌써 여러 번 한 구비만 더가서 쉬자고, 한 전봇대만 더 가고 쉬자고 달래 왔지만 이제는 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부터 다리를 절면서, 절뚝거리며 걷는 동생을 더 걷게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동생을 몇 번을 더 달랜 다음에 큰 아이는 동생을 업고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큰 아이도 얼마 가지 못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잠깐이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났습니다.
하늘도 어느새 잔뜩 흐려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서울이 나타날 것 같은데, 가도가도 보이는 것은 온 세상에 덮인 힌 눈뿐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하는 수 없이 길가 조금 우무간 곳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잠시 배고픈 것을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찬바람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형아야 졸린다 자고 가자!”
작은아이가 졸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는지 배고픈 것도, 추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형아야 졸린다 자고 가자!”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가는 7쌀 짜리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그래 서울에 가면 사람이 많아서 손을 잡고 가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엄마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엄마 주소를 잊어버리면 안돼! 나를 따라 해!”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다시 해봐!”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
“졸지 말고 정신 차려서 눈을 뜨고 이 형을 보면서 다시 해봐!”
서울시 영등포구 ...
어느새 작은아이는 더 이상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점점 잦아듭니다.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가면서 고개를 파묻고 깊은 잠에 빠져 가는 동생을 보자, 큰아이에게도 이제까지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왔습니다.
이튼날이었습니다.
읍내 장에 가던 마을 사람들이, 동구 밖에서 꽤 멀리 떨어진, 마을 저쪽 어구, 길 한편 조금 우물한 곳에, 밤새 내린 하얀 눈에 덮힌 낯선 작은 눈더미 속에서, 서로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그리고 한 손에는 누런, 빛 바랜 편지 봉투 한 장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얼어죽어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오늘 내 인생의 갈길은 확실한가?
갈길과 살길, 살길은 갈길을 찾을 때만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어느 한 작은 산골마을입니다.
온 세상이 흰눈으로 덮인 깊은 한 겨울이었습니다.
그 날도 하늘이 흐리더니 부슬부슬 눈발이 날리는데, 이른 아침 초라한 상여 하나가 마을 어귀에서 뒷산을 향하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상여 뒤에는 9살 정도 된 사내아이와 7살 된 사내 아이, 둘이 허름한 상복을 입고 동네 사람들이 메고 나가는 그 상여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남은 식구라고는 이 아이 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작은아이가 아직 갓난 아기였을 때, 세상을 먼저 버린 아내를 원망하면서, 물려받은 재산도, 변변한 기술도 없지만 힘든 세상을 어떻게든 남은 아이들과 살아보려고 제대로 된 끼니조차 변변히 잇지 못하고 온갖 힘든 일을 마다 않고 하다가, 이제 아버지 마저 병을 얻어 이렇게 한 겨울에 쓰러지게 된 것입니다.
장례가 있고 나서 얼마동안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불쌍한 이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고운말 관계상 끼어듬> 마저 안 계신 이 집에서 한 겨울에 어린 아이 둘이 지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큰 이이가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농짝을 정리하다가 오래 되어 누렇게 변색된 편지 봉투 하나를 발견한 것이 그 때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남들처럼 집안에 ‘어머니’가 없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마다, 아직도 어린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죽고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늘 “네 어머니는 멀리 갔다”고만 말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이 아이들은 언젠가 멀리 간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지내던 터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이 편지 봉투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렸하게 어머니가 계신 곳의 주소도 적혀 있었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큰 아이는 몇 번이고 그 주소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늘 “멀리 갔다”고만 말씀하시던 그 어머니의 주소였습니다. 이 주소대로만 찾아가면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 겨울 어느 날, 어린 7살 짜리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주소가 기록된 편지 봉투를 손에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큰 아이는 며칠을 벼르다가, 어느 날 7살 짜리 남동생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온 세상은 하얗게 눈이 덮힌 깊은 한 겨울 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울 갈 때 늘 다니던 마을 앞길을 잘 보아두었습니다.
저 큰길 어딘가에 있을 서울만 찾아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소가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모처럼 햇볕이 든 날을 잡아 서울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편지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기 전, 총각 처녀 시절에 주고받던 연애 편지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후 아버지는 이 편지를 아내 보듯 소중하게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큰 아이가 알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멀리 가신” 어머니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는, 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느 만큼 걸었는지 작은아이가 보채기 시작합니다.
“형아야 다리 아프다. 쉬었다 가자!”
벌써 여러 번 한 구비만 더가서 쉬자고, 한 전봇대만 더 가고 쉬자고 달래 왔지만 이제는 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부터 다리를 절면서, 절뚝거리며 걷는 동생을 더 걷게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동생을 몇 번을 더 달랜 다음에 큰 아이는 동생을 업고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큰 아이도 얼마 가지 못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잠깐이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났습니다.
하늘도 어느새 잔뜩 흐려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서울이 나타날 것 같은데, 가도가도 보이는 것은 온 세상에 덮인 힌 눈뿐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하는 수 없이 길가 조금 우무간 곳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잠시 배고픈 것을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찬바람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형아야 졸린다 자고 가자!”
작은아이가 졸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는지 배고픈 것도, 추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형아야 졸린다 자고 가자!”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가는 7쌀 짜리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그래 서울에 가면 사람이 많아서 손을 잡고 가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엄마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엄마 주소를 잊어버리면 안돼! 나를 따라 해!”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7통2반 김영숙
“다시 해봐!”
서울시 영등포구 구로동 423번지 ...
“졸지 말고 정신 차려서 눈을 뜨고 이 형을 보면서 다시 해봐!”
서울시 영등포구 ...
어느새 작은아이는 더 이상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점점 잦아듭니다.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가면서 고개를 파묻고 깊은 잠에 빠져 가는 동생을 보자, 큰아이에게도 이제까지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 왔습니다.
이튼날이었습니다.
읍내 장에 가던 마을 사람들이, 동구 밖에서 꽤 멀리 떨어진, 마을 저쪽 어구, 길 한편 조금 우물한 곳에, 밤새 내린 하얀 눈에 덮힌 낯선 작은 눈더미 속에서, 서로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그리고 한 손에는 누런, 빛 바랜 편지 봉투 한 장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얼어죽어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오늘 내 인생의 갈길은 확실한가?
갈길과 살길, 살길은 갈길을 찾을 때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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