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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4 다음 한메일 3.4 ID 초대권 3장 발송해 드립니다. 7
  2. 2006.10.10 구글, R&D 센터 우리나라에 세워진다. - 2년간 1천만불 이상 투자 3
  3. 2005.11.15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IT전문가」
  4. 2005.09.09 [김학준의 Net卽時空] 럭비공 같은「호환성」다스리기
  5. 2005.09.09 [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똑똑한 직원과 함께 일하는 법
  6. 2005.09.09 [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 열 가지 신화」
  7. 2005.09.09 베타 서비스가 성공하는 길
  8. 2005.09.09 직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열 가지 은유적 표현
  9. 2005.09.09 IT 정보를 기록하는 곳

다음 한메일 3.4 ID 초대권 3장 발송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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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초청장을 받아 사용하고 3장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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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http://mail.daum.net/event/mylibrary/

모두 소진하였습니다.

구글, R&D 센터 우리나라에 세워진다. - 2년간 1천만불 이상 투자

드디어 구글이 R&D 센터를 한국에 설립한단다.   2년간 최소한 1,000만불 이상을 투자한단다.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기사이지만 구글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이다.  구글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이미 제공하던 것 그대로가 아닌 막강한 기술력으로 한국 상황에 맞는 서비스로 공격을 할 것이다.  한국에 R&D 센터를 세우는 것이 한국 시장에 맞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인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구글이 들어옴으로써 막강한 자본과 막강한 기술력으로  공세를 취하면 우리나라 검색 업체들은 한동안 어려움을겪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도 구글의 공세를 그대로 맞아 그대로 주저 앉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야후의 공세도 충분히 이겨낸 국내 업체들이 아닌가?  오히려 구글의 공세를 이겨낼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여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구글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국내 검색 업체 및 포털 업체들이 잘 해 구글을 이겨 주길 바랄 뿐이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IT전문가」

앞으로 IT업계에서 일을 계속하고 싶으면, 뛰어난 기술 스킬을 몸에 익히는 것 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앞으로의 노동자는, 고용자에 새로운 비즈니스 스킬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다.

IT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론이나 자동화의 증대, 업무의 해외 이전 등의 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 미 IT업계에서는 향후, 기술이나 지역에 대한 지식, 업계 프로세스에 관한 지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겸비한 새로운 타입의 IT전문가가 요구될 것이라고, 가트너 그룹의 애널리스트들은 말한다.

IT업계의 노동자는, 고객의 업계에 관한 지식이나 그들이 가진 문제, 직면하는 규제 등, 비즈니스의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트너의 예측에 의하면, 중 규모/대규모 기업은 2010년까지, IT부문의 사업 규모를 2005년에 비해 30%정도 축소시킬 전망이라고 한다.

가트너의 조사 담당 부사장 다이니 모렐로(Diane Morello)는 성명 속에서 “IT부문에서 보강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개척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또, 직원들을 재배치하거나 그들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곳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트너에 의하면 IT관련직은 다음의 4가지 주요 트렌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 기술 인프라/서비스 관련 업무는, 최종 사용자의 조직에서는 감소하고, 반대로 서비스/하드웨어/소프트웨어 벤더에서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업무의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제공받게 된다.

•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소비자 전용의 온라인 서비스, 콜레보레이션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유저 기업, 시스템 인티그레이터, 컨설팅 기업 사이에서는 증가할 것이다.

• 경쟁력이 있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나 프로세스 자동화, 업무 프로세스의 설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요구된다. 프로세스의 설계/관리 분야는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이다.

• 「무형의 재산」을 관리하는 능력이나 지리적으로 분산해, 작업 능력도 문화도 다른 다양한 관계자를 관리하는 능력이 요구됨에 따라 관계 관리나 외주 관리에 관한 스킬이 중시될 것이다.

가트너에 의하면 IT계의 사무원은 가치 있는 명확한 메시지를, 장래의 고용자에게 보내기 위해 스킬이나 전문 지식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고용자도 이들 4개 분야의 전문 지식에 관련하는 직종의 경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렐로는 “IT전문가는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비즈니스에 특화한 우수 분야와 업계 지식을 판별하고 그것을 쌓아 올려 갈 필요가 있다”고 한다. @

[김학준의 Net卽時空] 럭비공 같은「호환성」다스리기

필자의 집에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내미가 만 두 살쯤 되던 해에 구입했던 어린이용 CD롬 타이틀이 여러 가지 보관돼 있다. 딱히 둘째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약 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들이 버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유는, 첫째 녀석이 워낙 그것들을 재미있게 잘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서 미련 때문에 선뜻 버리지 못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딸내미가 새로 태어났고 그 녀석이 이제 만 한 살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제 오빠가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과 이런 저런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컴퓨터를 만져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먼지가 잔뜩 앉아 있던 그 구닥다리 CD롬 타이틀들을 꺼내서 딸내미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오빠의 컴퓨터 CD 드라이브에 넣었다. 모니터 화면에 뭔가 메시지가 뜨는 게 보였다.
 
 “DAD caused General Protection Error…”
 
대충 그런 문구였다. 이런, 7년이란 세월은 CD롬 타이틀이나 소프트웨어가 생존해 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그 CD롬 타이틀의 제목은 “Just Me and My Dad”였고 설명서에는 윈도우 3.1 및 윈도우 95 에서 돌아간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7년 전에 이것을 돌리던 컴퓨터는 펜티엄MMX - 266MHz였고 윈도우 98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들내미의 컴퓨터는 펜티엄 III - 850MHz이고 거기에 깔린 운영체제는 윈도우 XP 이다. CPU와 운영체제가 두 세대나 건너뛴 셈이다. 집에는 그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다른 게임 프로그램 CD도 아직 20여 개나 남아 있다. 그 중에 몇 개를 CD 드라이브에 넣어보았지만 그것들도 제각기 나름대로의 에러 메시지를 뱉어내며 실행을 거부했다.

이때 눈에 띈 것은 그 아랫줄에 쓰여 있는 것은 매킨토시에서도 실행된다는 문구였다. 즉 한 개의 CD에 매킨토시와 PC의 콘텐츠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필자의 집에는 CD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먼지에 쌓인 채 누워있는 것들이 많다. 초기의 iMac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또한 구닥다리로서 PowerPC 계열의 G3 칩이 233MHz로 동작하는 물건이다. 이것을 다락에서 끄집어 내서 먼지를 털고 걸레로 닦은 다음 문제의 그 CD를 삽입해줬다. 부팅이 되는 것을 보고서야 여러 달 전에 운영체제를 Mac OS 9 으로 업그레이드했음을 기억했다.

아이맥에서는 역시CD롬 타이틀이 문제없이 실행되었다. 구닥다리 하드웨어에 비교적 구닥다리 OS가 그대로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은 필자도 맥 OS의 구버전에 대한 호환성이 윈도우 운영체제보다 뛰어난 게 아닌가 추측했지만, OS 9 역시 90년대 말의 운영체제이다.

새로운 매킨토시 하드웨어에 OS X (10) 이 설치되어 있는 환경에서는 이 CD 들도 실행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가 갖는 세대 차이는 이처럼 아예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호환성 (Compatibility)은 단지 기술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나아가서는 기업의 흥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PC 산업 초기의 IBM 클론 (Clone)이라고 불린 컴퓨터들은 IBM PC 계열과 수평적인 호환성을 가지는 것들로서 거기서 태어난 회사 중 하나인 컴팩은 IBM을 누르고 최대의 컴퓨터 회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 반면 IBM 은 그런 클론 제품들에 대적하기 위해 야심만만하게 PS/2를 내놓기도 했지만 기존의 ISA 인터페이스 기반의 XT 및 AT 기종들과의 호환성을 무시하는 바람에 완전히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수평적 호환성의 경우에 소비자들은 골치 썩일 필요가 없이 거의 항상 혜택을 본다. 가령 컴퓨터가 같은 기능을 가지면서 다른 회사의 제품과 같은 소프트웨어와 같은 주변기기를 사용하면서도 더 낮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거나, 더 높은 성능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선택의 폭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업체들끼리 경쟁을 통해 가격 대 성능 비는 더 높아진다.

수직적 호환성의 경우도 제대로 지원된다면 소비자들은 하드웨어 사양 때문에 혹은 소프트웨어 버전 때문에 새로운 제품을 사야 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필자의 경우처럼 여러 해 전에 구입했던 많은 CD롬 타이틀을 버리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서는 오래된 하드웨어를 없애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소박한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수직적 호환성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고 듣는 것이 백워드 호환성 (Backward Compatibility)이다. 즉 새로 출시한 소프트웨어가 예전 버전이 가졌던 기능을 그대로 지원하면서 추가적인 기능을 가질 때는 백워드 호환성이 있다고 한다.

가령 예전의 윈도우 3.1이나 윈도우 95의 경우에는 DOS 에 대해 백워드 호환성을 가지고 있었다. 운영체제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들도 버전이 올라감에 따라 백워드 호환성이 주요 이슈가 된다. 그리고 하드웨어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오래된 전자업계의 백워드 호환성의 실례는 1950년대의 컬러TV 방식 결정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처음에 컬러 TV 신호 방식을 정하면서 선택한 것은 기존의 흑백TV와의 호환성을 완벽히 제공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즉 새로 나온 컬러 TV에서는 예전의 흑백 TV 방송을 수신할 수 있으되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흑백 TV에서는 새로운 컬러 TV 방송을 수신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결과 방송사들은 컬러 TV 방송을 시작하기를 꺼려했고 전자업체들도 컬러 TV 수상기의 판매부진 때문에 더 이상의 개발을 하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되지 않아 미국 정부는 컬러 TV 및 흑백 TV끼리 완전한 상호 호환성을 가지는 새로운 방식으로 규격을 바꾸어서 오늘날까지 그 규격이 이어져 왔다.

또 다른 호환성은 포워드 호환성 (Forward Compatibility)이다. 이것은 미래지향적인 개념의 것으로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주위에서 상당히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같은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안겨주지 않아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가령 IEEE-1394 인터페이스의 경우 1394 인터페이스가 처음 상용화 되었을 때에는 200Mbps의 전송속도만 지원되고 있었다. 하지만 규격에서는 향후에 400Mbps 및 600Mbps 속도까지 지원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약속은 지켜졌고 기존의 200Mbps 지원 하드웨어는 그대로 더 높은 속도에서도 사용될 수 있었다.

필자가 지금 사용하는 마더보드의 경우에도 구입 당시 박스에는 “Prescott Ready”라고 적혀있었는데 이 또한 포워드 호환성의 간단한 예라고 하겠다.

세번째는 상호 호환성(Two-way Compatibility) 이다. 가령 새로 구입한 소프트웨어가 예전의 하드웨어에서도 잘 돌아갈 뿐 아니라, 예전의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하드웨어에서도 잘 실행될 수 있게 만든다면 바로 그것이 상호 호환성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지원하는 경우는 버전이 달라지는 수직적 호환성의 세계에서는 그리 많지 않다.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는 물론 통신 프로토콜과 주변기기 등의 모든 경우에서도 이런 호환성 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용자로서는 호환성이 많이 제공될수록 편리하지만, 업체들은 항상 기술적인 난이도와 개발기간, 안정성, 경쟁업체와의 대결, 새로운 기능과 성능 제공을 위한 신기술의 적용 등을 비롯한 많은 요인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인텔이 CPU 소켓을 계속 바꿔오고 한때는 슬롯 방식의 CPU를 채택했다가 나중에 포기한 것은, 광대한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서 조그만 한 예일 뿐이다. 칩 내부에서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은 엄청나게 많은 선택과 결정이 숨어있는 게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사실 백워드 호환성에 대해 무척이나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구매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장치들이 백워드 호환성이 지원되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한도가 있다.

필자가 썼던 주변기기 중의 상당수가 운영체제를 XP로 바꾸면서 쓸모없는 것이 돼 버렸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중소업체들의 경우는 백워드뿐만 아니라 포워드 호환성 면에서 더욱 미진한 면이 많다.

드라이버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호환성이 유지되게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그 업체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호환성 지원이 안 되어도 업체의 지명도에 도움이 안 되지만 지나치게(?) 지원을 잘해도 신제품 판매를 통한 매출 증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어느 선까지 호환성을 제공해 주느냐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논리도 작용하는데 또 한편에는 피치 못할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환성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호환성에 치중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더 높은 성능과 더 편리한 기능의 제품을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호환성이란 것은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이면에서 그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원되기도 하고 또는 포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업체들의 입장과 기술혁신의 명제의 측면은 그렇다 쳐도 소비자의 입장이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해결법은 아무래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모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포워드 호환성을 최대한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기술발전의 발목을 붙들지도 않고 소비자들이 구매에 투자한 비용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뿐 아니라 해당 업체에게도 이익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제 앞으로 다들 호환성에 대해 얘기할 때 백워드 호환성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것보다는 포워드 호환성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개발을 해 나가는 게 좋을까라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얘기할 수 있는 풍토가 되었으면 한다. @

[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똑똑한 직원과 함께 일하는 법



똑똑한 직원
7년 전 업무가 끝난 저녁 회사 근처 삼겹살 집에서 잔을 가득 채운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나는 외쳤다,


“정말 이 놈의 회사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거야!”


잠수함 진수식이라도 하듯 그 순간부터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술을 털어 넣기 시작했고 빈 술병은 끝없이 쌓여갔다. 동갑내기 십 여명이 모인 그날 자리의 주제는 멍청한 상사와 똑똑한 우리들의 갈등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직원 규모가 100명 가량 되던 벤처 기업에서 근무하던 우리들은 그야말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그 자신감을 억누르려는 조직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신규 사업의 실무자들이었지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몇 개월 동안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여 새로운 기획을 해도 결재를 받지 못하고 엉뚱한 사업이 집행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언젠가부터 저녁이면 야근 대신 근처 술집에 모여 하루를 푸념하고 낙담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아, 우리가 회사의 암적 존재가 되어 버렸구나!’ 한 때 똑똑하고 영민하다고 자부했던 자들이 회사에 대해 가장 불만이 많은 세력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런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하나 둘씩 조직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는 붕괴되고 말았다.

작년 이맘때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직원을 충원해야 했다. 이력서를 스크리닝 한 후 1차 합격자를 경영진에게 보고하며 이런 질문을 했다,


“똑똑하고 재수없는 직원과 멍청하고 성실한 직원 중 누가 좋으신가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경영진들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똑똑하고 성실한 직원은 없냐고 반문했다. 나는 다시 질문을 수정했다,


“만약 똑똑하고 개념없는 직원과 능력없지만 무지하게 성실한 직원 중 누굴 해고 하시겠어요?”


경영진은 단호하게 후자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똑똑하지만 조직에 대한 적응력은 조금 떨어질 것 같은 직원을 뽑았다. 2개월 후 그 직원이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해왔다. 설득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경영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경영진은 불같이 화를 내며 “똑똑한 놈들은 늘 뒷통수를 친다”며 혀를 찼다. 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다”라고.

어떤 중소기업의 사장이 내게 늘 하는 이야기 있다, “우리 회사에 정말 똑똑한 직원이 있거든. 다음에 오거든 꼭 소개해 주고 싶네”

몇 달 후 우연히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 똑똑하다는 직원과 함께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 똑똑한 직원과 몇 번의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하나의 고유한 진리를 재발견했을 뿐이었다, “사장보다 똑똑한 직원은 없다”.

거의 모든 회사는 멍청한 직원보다는 똑똑한 직원을 뽑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똑똑한 직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직원들에 비해 보다 높은 성취욕과 이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그릇에 바다를 담을 수는 없는 법”처럼 회사가 바다 같은 인재를 원한다면 회사가 바다보다 더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경영진들이 간과하는 것이다. 이들은 늘 자신이나 자신의 회사는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난한다, 똑똑한 자를 뽑았더니 조직을 망쳤다고. 결코 그렇지 않다. 조직이 똑똑한 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고 그 똑똑한 자의 재능과 비전을 소모시켰을 뿐이다.

똑똑한 직원의 딜레마
다른 한편으로는 그 ‘똑똑한 직원’이 멍청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없는 조직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였던 간에 잘못된 선택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밥벌이’라든가 ‘생계’라든가 ‘가능성’이라든가 ‘비전’ 혹은 ‘잠시만…’이라는 핑계로 자신과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그러면서 소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대놓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행동 패턴이 있다.


조직 내에서 경멸스러운 자들을 경멸스럽게 바라본다.

조직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이 사람으로 인한 것임을 안다.

조직의 운용에서 관리자들이 얼마나 노동력을 낭비하고 있는가 크게 고민한다.

인간답게 서로를 위해주고 신뢰하는 조직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엉뚱한 자가 성과를 가로채고 승승장구하는 것에 분노한다.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하지만 늘 머리 속에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자신이 발견한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조직의 일정보다 개인의 일정을 중요시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한다.

가치와 이상을 지향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연봉에 목숨 건다.

리더십이 없는 상사를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리더십을 가진 적은 없다.

누군가에게 충고하지도 않고 충고 받지도 않는다.


위와 같은 생각 혹은 행위를 하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 ‘난 그래도 좀 똑똑하지’라고 가끔 생각이 든다면 <똑똑한 자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아무런 실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다만 떠들어댈 뿐이다.

또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이 이런 속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할 경우 자신에 대한 모욕이며 몰이해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만나서는 모든 회사 내의 감정을 털어 놓거나 블로그에 비난의 글을 쓰거나 개인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거나 야근을 하며 투잡을 하거나 사람들과 누군가를 비난하는데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회사를 떠난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혹은 남들이 봤을 때도 똑똑하지만 결코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똑똑한 직원의 비극적 아이러니
자, 그렇다면 이제 ‘똑똑함’에 대해 재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똑똑함’은 단순히 일을 잘하고 매출을 증대시키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의 특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똑똑함’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일을 남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할 것

업무 지시를 잘 이해하고 잘 처리할 것

일상 생활도 그러할 것

결정적 시기에 내 편일 것

다시 말해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으며 아이디어가 뛰어 나더라도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리 똑똑한 직원은 아닌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똑똑한 직원’ 혹은 ‘똑똑한 자’는 실제로 똑똑함에도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똑똑한 문제아로 낙인 찍히는 경우가 많다. 막스 베버의 관료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우리는 회사 생활 일반에서 다음과 같은 법칙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멍청한 사람을 많이 뽑으려 한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직은 똑똑한 문제아를 선호하기 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똑똑한 문제아’를 선호한다. 왜냐면 완벽하게 그저 그런 인재를 선호할 경우 조직은 황폐화될 것이고 그렇다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똑똑한 자를 뽑을 경우 회사를 그만둘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어정쩡하지만 그런대로 경험을 통해 검증된 혹은 스스로 믿어 의침치 않는 행동을 보이는 ‘감당할만한’ 똑똑한 자를 뽑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똑똑한 문제아들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한다. 때문에 자신의 똑똑함과 상사의 우둔함 혹은 조직의 멍청함이 충돌했을 때 딱 2가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조용히 입다물고 있는 것. 이것이 현실을 살고 있는 똑똑한 문제아들의 비극적 아이러니다.

어쨌든 똑똑한 직원이 필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똑똑한 직원을 필요로 한다.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두려고 작심을 하고 있든 조직 화합에 문제가 있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어쨌든 간에 똑똑한 직원을 필요로 한다. 멍청한 직원이나 그저 그런 직원을 교육시켜서 똑똑한 직원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객단가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영진이라면 ‘어쩔 수 없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직원이 10명 뿐인데 어느 세월에 교육시켜서 밥벌이 할 때까지 기다리겠는가? 차라리 문제가 있더라도 그냥 참고 일 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의 경영진이라면 아래의 원칙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수치적 목표를 부여할 것
‘매출 증가’라든가 ‘팀 매출’ 따위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정확히 ‘너는 얼마를 벌어야 한다’라고 수치적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 대개의 똑똑한 직원들은 평화, 화해, 안정 보다는 도전, 전투, 달성 따위의 개념을 좋아한다.

수긍하는 자원을 부여할 것
실제로 사용 가능한 시간과 사람, 돈을 제공해야 한다. 설령 팀웍을 싫어하는 똑똑한 직원이더라도 자신이 요구하는 시간과 사람 그리고 돈에 대한 권한을 갖기를 원한다. 똑똑한 경영진은 권한만 배분하기도 한다.

팀웍을 강제하지 말 것
팀웍 속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똑똑한 직원이 반드시 존재한다. 수치적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면 굳이 팀웍을 강제할 이유는 없다.

해고될 수 있음을 정확히 인지시킬 것
똑똑한 직원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는 것이다. 경영진은 나머지를 다 포기하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똑똑한 직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진들은 ‘똑똑하지만 함께 일하기 어려운 직원’들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경영진들은 이 생각에 공감하며, 그에 따라 직원들을 다룬다. 상대방의 의지를 알고 있어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왜 조직은 “함께 일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직원을 계속 찾고 있으며 그들에게 급여를 지불하는가? 바로 이 점에서 똑똑한 직원들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생존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자신이 똑똑한 직원이며 동시에 앞서 이야기한 ‘똑똑한 직원의 딜레마’에 빠져 있고 또한 그것을 상사나 경영진이 알고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결단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러니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만 이 대처 방법은 의미 있다. 뭔가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다음 대처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에 관심을 가질 것
자동차세 절약 방법이나 근로자 우대 저축, 주식 투자 방법, 그룹 쿨이 해체한 이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주변 직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라. 설령 관심이 있더라도 야오이나 재팬 애니메이션이나 클래식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 상대방은 여러분이 자신과 대화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생일, 기념일, 축하할만한 날짜를 기억할 것
모든 인간들이 그러하듯 회사의 동료와 상사 그리고 부하 직원들도 “기억해 주는 것” 자체에 감동한다. 이러한 감동은 다른 많은 문제나 충돌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칭찬을 할 것
정말 일은 멍청하게 처리하지만 책상 정리는 끝내주게 하는 동료가 있다고 치자. 아낌없이 그 깔끔함을 칭찬해 주자. 그러나 칭찬하며 자신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띄고 있다면 비웃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리더십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상사에게 어떤 칭찬을 할 것인가? 회사 업무는 봉급 받는 만큼만 하겠다고 작심을 한 것 같은 부하 직원에게 어떤 칭찬을 할 것인가? 진심으로 하는 칭찬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다.

반론은 업무 외 시간에 작성할 것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신규 사업이 있다면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라. 회사는 여러분이 업무 시간에 “반론을 위한 조사”를 하길 원치 않는다.

정말 그 논쟁에서 승리하고 싶고 잘못된 의견을 반박하고 싶다면 업무 외 시간에 조사를 하라.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하고 휴일 근무를 해서 왜 그것을 해서는 안 되는 지 문서화하고 근거를 제시하라. 물론 대안도 있어야 한다. 반론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여러분이 업무 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를 고립시키지 말 것
제법 똑똑한 직원들은 충돌하는 의견을 주변의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합의를 도출한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동료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대개의 상사나 의사 결정권자는 고립된다. 고립된 상사는 더 이상 여러분과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여 결정한다. 상사를 고립시키는 것은 극단적인 결정을 쉽게 하도록 만들 뿐이다.

작은 성과를 무시하지 말 것
대개의 ‘똑똑한 직원’들은 작은 것보다 큰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결과론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과정 없이 결과 또한 없다. 작은 성과를 아낌없이 드러내라. 작은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더욱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한 발을 뺐다는 것을 드러내지 말 것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해야 한다거나 계속 자신의 의견이 탈락되거나 혹은 ‘이것이 정의다’라고 생각되는 일이 추진되지 않을 경우 자신도 모르게 업무에 대한 정열의 불꽃은 사그라지게 된다. 그것은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깨닫게 된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드나들게 되고 자료를 백업하고 메신저로 신세 한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한 발을 뺀 사람에게 조직이나 동료들은 냉정하게 대처한다.

똑똑하지만 함께 일하기 힘든 직원이 되어 자를 위한 조언의 핵심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똑똑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지혜롭기는 어렵다. 왜냐면 지혜로운 것은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수 많은 질문에 대해 하나씩 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게 죄인가?
똑똑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똑똑함이 제대로 된 그릇 - 조직 혹은 회사 - 에 담기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필자는 많은 조직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벌어지는 비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별다른 실천적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조직이나 회사에서 충돌을 발생시키며 일하는 사람이라면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 똑똑한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자신과 맞지 않는 혹은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것은 달리 말하면 똑똑하지만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을 다뤄야 하는 경영진의 인력관리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똑똑하지도 못하면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경우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 친하다’거나 ‘말을 잘한다’거나 ‘생각이 빠르다’는 것을 똑똑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그건 그냥 ‘남들보다 좀 낫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똑똑함’은 조금 나은(better than)이 아니라 굉장히 훌륭한(excellent) 것을 말한다. 단 한 명의 똑똑한 사람이 회사를 살릴 수도 있다. 회사에겐 이런 인재 굴러온 복덩이를 만날 기회가 간혹 생긴다. 어쩌면 이미 여러분의 회사에 그 복덩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 복덩이를 제거해야 할 암적 요소로 바라보는 멍청함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 열 가지 신화」

리더십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상이하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그것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신뢰 즉, 잘못된 신화도 다양하다. 문제의 핵심은 잘못된 신화를 고수함으로써 그것 자체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역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쯤 땀나게 걸어가면 교보타워라는 멋진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 지하에는 2백만 권 이상의 책이 쌓여있다. 책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실용 서적 코너에서 리더십과 관련한 수 십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감각적인 문구와 가독성 높은 글꼴, 예쁘게 양장 포장된 책들이 나 좀 사달라고 손짓을 한다.

책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영화를 상상해 본다, 온갖 화려한 책들이 즐비한 초대형 서점에서 불이 나고 서로 빠져 나가려 아우성을 치는 상황에서 영웅적 주인공이 책들을 구출한다. 이 영화에서 돈도 많고 사람들에게 주목 받지만 인간적으로 영 글러먹은 몇몇 책들이 주인공에게 까불다가 결국 불에 타 죽는다. 영화의 제목은 ‘실용 서적들의 최후’가 어떨까? 영화의 교훈은 ‘주인공에게 잘 보인 책만 살아남는다’ 정도로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웃고 있으니 늘 과도하게 친절한 점원이 다가오려고 한다.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점원의 시야에서 탈출한다.

리더십(leadership)에 대한 책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책을 검색하면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수 천 권의 책을 쏟아 낸다. 아마 이들 중 몇 권은 이미 읽어 봤을 것이고 살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몇 권 정도는 꼭 읽게 될 것이다.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세상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단어만큼 다양한 오해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도 드물다. 어떤 곳에서 리더십은 지도자의 능력이기도 하고 어떤 시간에서 리더십은 독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서 리더십은 생명이기도 하다. 리더십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상이하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그것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신뢰 즉, 잘못된 신화도 다양하다. 잘못된 신화는 잘못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어떤 경우 그 신화가 너무나 강력하여 문제의 이유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리기도 하는데 외국인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신화가 좋은 예제가 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인 감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신화는 문제의 핵심을 완벽하게 벗어나게 만든다. 리더십 또한 매우 많은 문제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정작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고수함으로써 그것 자체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

리더십에 대한 열 가지 잘못된 신화는 리더십 자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리더십은 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변용 가능하다는 것과 제멋대로 이해하는 것이 전혀 다름을 알고 있다면 열 가지 잘못된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리더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 리더십은 타고난다
알렉산더 대왕의 리더십과 체 게바라의 리더십과 간디의 리더십이 같은가? 혹은 이건희의 리더십과 우리 회사 사장의 리더십과 지난 주에 입사한 신입 사원의 리더십이 같은가? ‘타고 나는 리더십’이란 전문적으로 교육된 리더십을 의미한다.

리더십은 규범과 문화 그리고 조직 속에 내재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교육과 전수라는 과정을 통해 체화한다. 극소수의 사람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전수의 혜택은 받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교육받은 리더십은 대개의 경우 권력과 이익의 유지에 복무하는데 사용된다.

이런 관점에서 타고난 리더십은 매우 극소수에게만 적용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 리더십은 배우고 받아들인다. 수 만년 이상 유지된 권력이 있어서 그들의 행동 패턴이 교육과 전수 이외에 DNA 속에 각인될 수 있었다면 모를까 마치 인간 자체가 원래 그러했다고 주장하는 ‘타고난 리더십’은 없다.

둘, 리더십은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리더십은 매우 다양하게 이해되며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상황을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리더십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열 걸음 물러서더라도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리더십은 그것이 필요로 하는 환경에서만 필요하며 대화와 협의 그리고 존중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만 필요하다. 변기가 3개 뿐인 화장실에서 2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줄로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여기에 리더십이 필요한가? 아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규범과 규칙이다.

미국과 영국은 자칭 세계의 리더이며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셈인데 왜 세계무역센터가 사라져 버리고 영국 지하철에서 폭탄이 터지는 걸까? 여기에 필요한 것은 협상과 타협이다.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은 독재자와 멍청이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셋, 좋은 리더십은 착한 성격에서 나온다
리더십은 조직의 합의에 근거한다. 강제로 어떤 일을 시키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의 주요한 목적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십, 받아들일 수 있는 리더십을 구현하는 사람들은 대개 품성이 선하고 착한 경우가 많다, 당신에게만. 이게 중요하다. 주변을 둘러 보라. 자신의 조직에서 리더십이 있다고 불리거나 혹은 자신이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하다’, 자신에게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여.러.분이 리더십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 ‘자신에게만 착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좋다’, ‘착하다’, ‘성격’, ‘리더십’이라는 최소한 4개의 단어에 대해 임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단어는 평생을 잠자리를 함께하는 아내와도 합의를 이루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니 다시 물어보자,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착하기 때문에 리더십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착한 리더십을 갖고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과 아직은 친하기 때문에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인가?

넷, 나이가 들수록 리더십은 세련되어 진다
대개의 리더십은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리더십은 구성원에 대한 설득이 매우 중요하므로 합리적이며 이해할만한 근거를 내세워야 한다. 때문에 경험은 리더십의 매우 중요한 항목이 된다. 똑똑하지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 노숙한 경험자의 조언을 구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리더십은 더욱 세련되고 유연해지며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경험이 쌓일수록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 더욱 세밀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어도 세련되기는커녕 더욱 유치하고 치졸해지는 경우도 많다.

리더십은 훈련의 과정에서 성장하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똑똑한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과 비슷하다. 1천만 개의 웹 문서가 쌓여 있을 때 검색 엔진은 비슷하게 동작한다. 그러나 10억 개의 웹 문서가 쌓여 있을 때는 똑똑한 검색 엔진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르게 동작한다. 똑똑한 검색 엔진은 여전히 재빠르게 정보를 찾아서 결과를 알려 주지만 그렇지 않은 검색 엔진은 전혀 동작하지 못하거나 검색 결과를 기다리다 완전히 지쳐 버린 후에야 결과를 낸다. 그것도 제대로 된 결과도 아니고 “서버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은 쌓여가겠지만 고뇌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리더십은 그런 검색 엔진과 마찬가지다.

다섯, 내 상사는 정말 리더십이 없다!
절대 다수의 직장인이 상사가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교수나 선배에 대해, 혹은 가정에서는 특히 아버지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리더십이라는 것이 늘 모두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구현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는 리더십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 있다. 혹은 이런 경우라면 정말 비참한 감정이 들겠지만 ‘나를 뺀 리더십’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현재 조직이 구현하는 리더십에서 자신이 소외된 것이다. 그러니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상사가 리더십이 없는가? 아니면 내게만 그러한 것인가?

여섯, 리더십은 무사공평해야 한다
리더십은 설득의 심리학에 기초한다. 설득을 하려면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의 내외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도움으로써 리더십은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은 리더와 대상 뿐만 아니라 대상과 대상(구성원들)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만드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 대한 ‘무사공평’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은 어떤 경우 목적을 위해 당신을 처단할 수도 있다.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다른 일을 시키거나 혹은 회사에서 퇴출 시킬 수도 있다. 그것이 리더십이 구현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리더십은 결코 무사공평하지 않다. 리더십은 그것이 추가하는 목적과 부합할 뿐이다.

일곱, 최신의 리더십을 많이 배워야 한다
이런 생각 덕분에 지금도 리더십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경영학 교수들이 밥벌이를 하고 있다. 리더십은 거의 모든 학문에서 언급되고 있다. 특히 정치학에서 오래 전부터 리더십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경영학이 이것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이 정치적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면 굳이 리더십의 최신 이론을 배우기 위해 서점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정치학 개론을 펴 놓고 읽어도 리더십에 대한 똑 같은 이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신의 것보다 과거의 것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물론 기술 영역에도 이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떤 회사는 공자의 리더십을 표방할 수 있다. 또 다른 회사는 부처의 리더십을 기본적인 리더십의 테마로 삼을 수 있다. 최신의 리더십 이론 또한 과거의 현자와 학자들의 이론에 기초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텔레토비의 머리 크기를 보고 현명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여덟, 크게 성공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해
크게 성공한 사람 – 그게 돈이든 명예든 예술이든 간에 – 은 공통적인 리더십이 있다. 성공과 리더십의 상관관계에서 리더십이 성공을 견인했을까? 다시 말해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개의 경우 성공한 사람의 주변 인물들이 누군가 성공한 이후에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리더십’으로 과거의 일을 재해석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 행동과 현재의 행동을 ‘리더십’으로 해석하면 보기 좋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리더십은 성공의 조건이 아니라 성공의 중간 산출물로 보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현재 리더십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리더십을 만든 후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또 대박을 맞은 사람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상, 리더십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며 또한 그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산출물이다.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이 풍기는 공통된 ‘리더십의 향기’가 존재하는 이유다.

아홉, 리더십은 사업과 회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리더십은 매우 일상적인 단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 사회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회사’일 뿐이다. 리더십은 회사와 가정, 지역 사회, 봉사 단체에서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리더십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훌륭한 리더이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애인과 관계에서 리더십은 고사하고 금간 유리잔처럼 애정 누수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학교에서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사가 동네 반상회에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모든 리더십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리더십은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중 몇몇 경우에만 리더십을 발휘할 뿐이다. 나머지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는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 즉 리더를 찾거나 찾아가야 한다.

아파트 진입로 개선을 위해 서명을 받는 아줌마와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리더십 강한 어떤 회사의 부장이자 그녀의 남편을 생각해 보라. 남편이 그녀의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반대로 그녀 또한 남편이 회사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편은 단지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리더십이 사업과 회사 혹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영역에서만 발휘될 것이라고 믿을 때 리더십은 편협한 것이 되며 그것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충돌하게 된다.

열, 리더십이 회사를 살릴 것이다
리더십은 조직의 제한 범위를 확장하고 자발성을 북돋움으로써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과거의 모든 연구 분석 데이터는 강제적 시스템보다 자발적 시스템이 훨씬 효율적임을 증명해 왔다. 때문에 위기에 처한 조직이든 잘 돌아가는 조직이든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직의 관리자는 늘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고 교육 받으며 그것을 부하들에게 전수한다. 또한 조직원들은 직급과 지위에 관계없이 리더십을 갖도록 요구 받는다. 왜냐면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릴 수도 있으며 현재의 긍정적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더십은 그러한 힘이 있다.

그러나 언제 동화적 현실이 회사를 살린 적이 있던가? 리더십은 사람에 의해 구현된다. 리더십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한 리더십은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오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내일은 그들을 퇴출시키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리더십은 용이 지키는 오래된 성에 잠들어 있는 공주에게 입맞춤할 멋진 왕자가 아니다.

리더십은 그 왕자가 타고 온 백마이며 용과 싸우기 위해 입은 갑옷과 칼과 방패다. 잠든 공주에게 키스하는 것은 왕자 자신이다. 결국 리더십이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회사를 살린다. 리더십이 동화적 현실이 되었을 때 리더십은 회사를 망하게 한다. 훌륭한 갑옷과 칼과 방패와 백마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베타 서비스가 성공하는 길

최근 웹서비스에는 베타서비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보다 사용자 가까이에서 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취지인 것이다. 베타 서비스에서 중요한 덕목은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이들의 능동적인 부가 서비스 참여, 혁신성, 베타테스트터 들의 디지털감성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베타(Beta) 버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는 웹 서비스를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베타 버전이라고 하면 최종 버전이 나오기 전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버그를 잡기 위해 내놓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흔히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통용되던 ‘베타’라는 단어가 웹 서비스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구글이 바로 이런 베타 웹 서비스의 원조다. 구글 카달로그(Catalog)나 프루글(Floogle)은 몇 년 동안 베타 상태이며, 유명한 지메일(Gmail)은 1년이 넘도록 베타 꼬리말을 떼지 않고 있다. 구글맵, 데스크탑 검색, 구글 서제스트, 구글 토크 등이 주요 서비스 역시 베타 버전 상태이다.

이제 상황이 이쯤 되니 신생 서비스 대부분이 베타라는 딱지를 달고 나온다.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Flickr)는 야후!에 인수 된 이후에도 여전히 베타이다. 블로그 검색 엔진 테크노라티(Technorati)가 얼마전 선 보인 BlogFinder는 [new] 대신에 [beta]라는 딱지를 붙였다. 심지어 국내 전문 검색 엔진을 표방한 첫눈(1noon.com)이라는 사이트도 베타와 의미가 같은 ‘예고편’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베타 서비스가 그리 생소한 건 아니다. 많은 웹사이트들이 서비스를 오픈 하기 전에 사내 혹은 자사의 특정 사용자를 대상으로 폐쇄 베타 서비스를 해 왔으며 이를 통해 수집한 피드백을 웹 사이트에 적용해서 정식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공개 베타 서비스는 바로 서비스에 관심 있는 집중된 사용자층을 공략하여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베타 테스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게이머들을 폐쇄 베타 서비스에 끌어 들이고 이들에게서 좋다는 반응을 못 이끌어 내면 100% 성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웹 서비스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 미디어가 트렌드가 되면서 새로운 웹 서비스를 써 보고 이에 대한 후기를 올리며 입으로 전도하는 얼리어댑터 혹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개 회사들이 서비스를 기획하기 전에 이런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집중 인터뷰(FGI)를 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직접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초기 서비스를 개방하지는 않았다. 대개 돌아오는 피드백이 대중성과 동떨어진 것이 많다는 판단에 서다. 그러나 이들이 행보와 반응이 바로 향후 대중적인 사용자들이 따라 오는 로드맵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간과하면 안된다.

작년 초 구글이 발표한 1GB 이메일 용량이라는 획기적인 서비스 아이디어는 초대를 근간으로 하는 베타 서비스 마케팅 효과도 독특했다. 필자도 지메일이 서비스를 시작한지 10일만에 외국인 친구의 초대로 가입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용량이 2GB로 늘어난 것 이외에 특별히 바뀐 것은 없다. 획기적인 변화는 없어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AJAX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웹 브라우저를 위해 HTML 버전을 제공하고, 한국어로 사용 가능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 나의 가족들에게 초대권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국내외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메일 베타를 참여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비스가 개선된 이유이다. 초기에는 내 스스로도 조금씩 늘어나는 지메일 초대장을 지인들에게 보내며 써 보기를 권했다. 바로 베타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다는 독특한 자부심과 은근한 만족이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베타 테스트를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로열티를 높여 주는 것이야 말로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베타 서비스에 들어갔을 때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오피니언 리더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바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웹사이트들이 주요 핵심 기능과 이에 대한 개선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제공하는 부수 기능들을 추가하여 서비스의 정체성과 질을 동시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은 경영자 혹은 기획자들의 욕심과 더불어 서비스 핵심 기능을 분별하지 못하는 개발자들이 흔히 만들어 낸다. 이런 실수는 기획의 달인이나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일수록 더하게 된다. 둘 다 기능을 추가 하는데 관심이 있지 주요 기능을 개선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베타 테스터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서비스 부가 기능 구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베타 서비스 핵심 기능을 API로 제공해 주고 다양한 부가 기능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도구를 제공한다. 구글이나 플릭커 등이 이런 방법으로 핵심 기능에 대한 기능 개선과 아울러 서비스 네트워크의 확대를 꾀했다. 각종 프로그램 언어로 된 플러그인 확장 기능들이 서비스를 더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타 서비스를 만들 때 개방성은 꼭 염두 해야 할 덕목이다. 이를 도와 주는 XMLRPC, REST를 포함한 웹 서비스(Web Services), AJAX를 기반한 자바스크립트 기능, ASP/PHP/Python 등 경량 스크립트 언어 지원, 파이어폭스 확장 기능(Extensions) 등의 기술을 능동적이고 전략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베타 서비스가 안전한 대중성에 너무 치우쳐도 안 된다. 1962년 출판된 에버렛 로저스의 저서 ‘Diffusion of Innovation’에서 나오는 수용자 확산 이론은 1995년 재판이 발행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제품을 수용하는 단계를 혁신자(Innovator)-초기 수용자(Early Adaptor)-초기 대중집단(Early Majority)- 대중 집단(Late Majority)-전통 집단(Laggards) 등으로 나누었다. 최근 웹 기획에서도 혁신 그룹이나 초기 수용자 보다는 초기 대중 집단을 기초로 서비스를 기획해야 마케팅적인 성공과 함께 시장 창출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포탈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다. 이미 시장에 나온 혁신적인 컨셉을 대중적으로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이다. 즉, 베타 서비스라면 혁신성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대중화된 서비스 컨셉을 그대로 따라 만들면서 베타 서비스를 하는 것은 사용자들에게 외면 받는 일이다.

정말 열심히 서비스를 사용해 주고 있는 베타 테스터들에 대한 디지털 감성을 보호해 주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 플리커(Flickr)가 2006년부터 야후!와 아이디 통합을 하기로 하고 그 전에 회원들에게 야후!아이디로 전환하기를 요구 하자 많은 열성 회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플리커가 대중화된 사진 공유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야후와의 아이디 통합으로 인해 자신들이 군중에 휩쓸리기 싫어하는 묘한 심리를 간과하고 있다. 제대로 된 베타 서비스를 지속하려면 이들에 대한 특별한 소통 통로를 만들어 주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소수로서 누리는 특별함과 군중을 벗어난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베타 서비스를 사용하는 열성 사용자들이 대중적이지 않고 숫자가 적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숫자가 소수라 하더라도 스스로 카페를 만들고 개선 메일을 보내 주며 담당자를 만나러 회사까지 찾아 와 준다면 충분한 성과이다. 게다가 조금씩 사용자 수가 늘고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베타 서비스의 핵심은 작은 기능이라도 혁신적인 서비스와 기술로서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직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열 가지 은유적 표현

직장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조직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기준을 만들어갈 수 있다. 조직 생활에서 은연 중 부딪치는 다양한 은유적인 표현들은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표식자이기도 하다. 여기 자주 사용되는 열 가지 은유적 표현 속에서 자신의 바로미터를 되돌아보자.

대략 천 오백 년 전쯤 삼국 시대, 백제에는 은유의 달인이라 불리는 청월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든 원래 그대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배운 자가 할 바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늘이 맑다고 하면 될 것을 “천하의 구름이 저 산 허리에 다 묶여 있으니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이 없도다” 라고 그럴싸하게 내뱉고는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호탕한 듯 웃음을 날리곤 했다. 그럭저럭 시구나 던져주며 입에 풀칠하고 살던 청월은 어느 날 큰 사건에 연루되어 목이 달아날 처지에 놓이게 생겼다. 관아에 끌려가 관리 앞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언하게 되었다.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렸으니 온갖 기예를 다 동원하여 자신을 변호하기에 가장 그럴싸한 미사여구와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여 결백을 주장했다. 뜨거운 차 한잔을 다 마실 동안 그는 등에 땀이 솟도록 자신을 변호했다. 마침내, 청월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관리가 명했다,

“무슨 말인 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으니… 저 놈의 목을 쳐라!”

은유적 표현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사회의 변화는 더디고 보수적인 편이라고 한다. 조직도 이와 비슷하다. 애초에 5명이 시작한 벤처 기업에서 은유적 표현 따위가 어디 있으랴. 배고프면 한 사람이 밥 먹자고 외치면 모두 따라 나선다. 일이 힘들면 힘들어 죽겠다고 이야기하고 무단 결근을 하기도 한다. 월급을 못 줄 것 같으면 사장이 직원들 다 모아놓고 소주 한 잔씩 따라 주며 이번은 모두 견디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운 좋게 회사가 망하지 않아 연혁이 쌓여가고 매출이 안정화되고 새로운 직원들도 늘어가면 슬슬 은유적 표현, 회사에서만 혹은 그 조직이나 몇몇 사람들만 사용하는 그런 표현이 생기게 된다. 이제 누군가 ‘어제 그 집에 또 갈까?’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어제 갔던 사람들만 가자는 소리다. 만약 그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가는 길에 ‘길동 씨도 함께 갈래요?’라고 물어 본다면 그건 ‘눈치껏 빠져라’ 는 의미다. 아, 은유의 시대가 도래했고 말귀 못 알아 먹는 사람은 이제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은유적 표현 열 가지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말귀를 잘 알아 듣고 있는 지 그리고 자신 또한 얼마나 은유적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지 알아 보라. 은유적 표현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백제의 청월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은유적 표현을 써서 명을 재촉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하나. 수고했어!
전날 야근을 하고 기획 안을 상사에게 보고하니 그런다, “수고했어!” 이런 상황에서 이 말의 의미는 이렇다,

‘상사로서 너의 노고를 인정한다. 고맙지? 하지만 기획 안에 대한 평가는 좀 있다 하겠다’

상사가 수고했어 라고 이야기했다고 아, 정말 내가 수고했는가 보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지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정말 일찍 퇴근해도 되는 날에 상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길동 씨, 기획 안을 사장님이 정말 마음에 들어 하던걸, 수고했어!” 이럴 때는 과감하게 상사에게 “소주 한 잔 사시죠?”라고 진지하게 물어봐도 된다.

가끔 동료나 후배 직원에게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대개 자신이 함께 야근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의미거나 뭔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야근을 했으니 수고는 했다는 인사치레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엔 가볍게 웃으면서 “커피 한 잔 뽑아주시지?”라고 응대해 주면 좋다. 우리는 상대방이 활짝 웃으면서 밝은 목소리로 수고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매우 자주 속는다. 그건 사무실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직원이 여러분에게 미칠 듯 화사한 웃음으로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하는 순진한 남자 직원의 마음과 비슷하다. 그녀는 오늘 아침 출근 길에 만원 짜리를 주워서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직장에서 가장 많이 주고 받는 표현인 “수고했어!”는 그냥 관용어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둘, 이번 달부터 매출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
전 직원이 참석하는 매월 정례 회의가 끝나고 팀 회의를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마른 하늘에 2만 암페어의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우리 파트는 웹 사이트 커뮤니티 지원 부서인데 무슨 매출 관리를 한다는 말인가? 거의 모든 회사에서 갑자기 ‘매출 관리를 한다’는 소리는 이런 의미다,

“직원들 군기가 빠져서 매출이 떨어졌다, 지금 필요한 건 당근이 아니라 채찍이다!”

여러분이 일단 해야 할 일은 사무실 파티션 주변을 날아다니는 채찍을 피하는 것이다. 가급적 머리를 낮게 숙이고 업무 시간에 메신저도 자제하고 칼 출근 칼 퇴근의 아름다운 미덕도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왜냐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실질적 매출의 상승이 아니라 본보기가 될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원래 양이 잘 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오랜만에 자신이 그 양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물론 정말 경영 위기로 인해 매출을 독려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능한 경영자와 식견 있는 경영인은 매출 위기가 오기 전에 이미 시스템을 정비하고 직원들의 매출을 관리한다. 무능력한 양치기는 양들이 마구 뛰어 다닌다고 양몰이 개 대신 자신이 호루라기 불어대서 양을 몰기는커녕 너른 들판으로 놀라 도망치게 만들기 마련이다.

셋, 성과는 반드시 분배하겠습니다
아직도 이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는 지 의문이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회사는 여전히 많다. 주로 돈 없는 벤처 기업이나 중소 기업에서 월급 날 근처에 자주 쓴다. 아니면 매출을 상승 시켜야겠는데 특별한 계기를 만들 수 없을 때도 이런 표현을 쓰게 된다. 이 말은 다들 잘 알겠지만 이런 의미다,

“성과는 분배합니다… 이윤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근데 계약서는 작성 못해요”

어떤 회사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몇 주 전에 성과 분배에 대해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가 일정 매출 이상을 달성하면 성과를 분배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 때 한 직원이 “그럼 그걸 문서화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참 똘똘한 직원 아닌가? 훌륭한 직원을 둬서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려는데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지난 주부터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 그 회사를 사장님이 소개시켜줬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넷, 토론이 없는 조직은 발전이 없습니다
토론. 토론. 토론. 어디를 가나 어디에서나 그리고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한다. 토론에 대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사람들은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거리낄 것 없이 이야기한다. 토론은 논리의 싸움이다. 합리성의 싸움이고 결과에 승복하며 합의해야 한다. 직급보다 지식이 중요하고, 경험보다 논거가 중요하고, 언변보다 행동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다. 그런 토론을 경험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다. 혹시 현재 조직에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오늘도 누군가 “토론 없는 조직은 발전이 없다”는 소리를 하거든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게 좋다,

“긴 이야기는 보고서로 제출하시오”

다섯, 우리는 널 믿어
이건 꽤 민감한 표현이다. 왜냐면 “우리가 널 믿는 것”이지 “내가 널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뭔가 힘이 되는 말을 해 주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이 없을 때 대충 후려쳐서 “우리가 널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그 우리는 팀이 될 수도 있고, 동료들이 될 수도 있고, 건물 수위 일동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군가 자신을 믿어 준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을 일이다. 그냥 그 정도만 생각하면 속 편하다. 간혹 어리석게도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을 그 “믿어 준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함께 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이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어… 정말 미안한데 오늘은 좀 바쁘네…”

여섯, 우리 팀은 안전해
휴가를 갔다 왔더니 조직이 완전 개편되어 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다 나가 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할 수도 없고 좌불안석이다. 힘겹게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하니 우리 팀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말 안전한 경우다. 앞으로 최소 6개월 이내에 여러분이 공금을 횡령하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모니터를 발로 걷어차 부장의 책상 위로 날려 버리지 않는 이상 회사에서 해고될 일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도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나쁜 이야기를 하느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게 낫지 않나? 그렇지 않다고? 그럼 계속 혼자서 고민하시든가.

일곱,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
한 동안 회사가 끝나면 인원을 조각해서 이런 저런 술집을 전전할 때가 있었다. 그 때 회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대는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지 않는군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학원 다니게 돈 좀 주세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또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똑 같은 대답을 했더니 회사에 청구하면 50%를 지원해 준다고 한다. 내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하루 15시간 근무하고 일주일에 사흘 철야하고 새벽 2시에 들어가는데 무슨 재주로…”

혹시 여러분도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소리는 발명왕 에디슨이 그러했듯 병든 닭처럼 잠깐씩 조는 식의 수면으로도 체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표현은 여러분이 일에 대한 미련을 좀 버려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돌이켜 볼 때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했던 시절에 더 좋은 성과를 냈다고 자신할 수 없다. 피폐해진 몸과 마음에서 무슨 창조적 발상이 나오겠는가. 그러니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집에 일찍 들어가서 소설책도 보고 OCN으로 밀린 영화도 보고 미디어 다음에 접속해서 만만한 뉴스 찾아서 코멘트에 악플러 짓도 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자. 물론 사장이 여러분에게 이런 소리를 한다면 대개 이런 뉘앙스를 담고 있다,

“퇴근하면 술만 처먹지 말고 공부도 좀 해라… 너 단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여덟, 회사 업무 집중을 위해 메신저 사용을 금합니다
이 표현에서 ‘메신저’ 대신에 ‘소라넷’ 이나 ‘증권 사이트’나 ‘은행 사이트’ 혹은 ‘블로그’, ‘미니홈피’, ‘세이채팅’ 등등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들을 금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회사 업무 방해”다.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특정 프로그램이나 웹 사이트의 접근을 막는 것은 숨겨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올해 초 국내 포탈 중 하나인 A사에서 전 직원의 MSN 메신저 사용을 금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장님께서 “우리도 메신저 있는데 왜 경쟁사 것을 쓰느냐!”라며 버럭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 즈음에 국내 최대의 웹 메일 서비스를 공급하는 A사는 MSN과 소송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카페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A사의 직원들은 즉각적인 반발을 했고 이 소식이 외부로 전해지자 MSN 금지령이 풀렸다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 지금 MSN 사용이 풀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몇몇 회사는 정말 보안상의 이유로 각종 프로그램의 사용을 금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인 S 기업의 경우 회사 내의 PC는 터미널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회사 업무를 이유로 특정 프로그램이나 웹 사이트의 접근을 금지하는 표현은 실제로 이런 의미가 있다.

“돈도 많.이. 못 버는 것들이 감히 놀아…”

아홉,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그날 저녁 회사가 입주한 건물에서 벌레 잡기 방역을 하든가 바닥에 왁스를 칠하든가 정전이 있거나 엘리베이터 수리를 하거나 다음 날이 명절 연휴가 아닌 이상 이 말을 곧이 곧 대로 믿고 웃으며 퇴근하는 당신은… 미래가 어둡다.

열, 마켓이 살아나고 있어요
이 얼마나 흥분되는 표현인가! 마켓(market)이 살아나고 있단다. 켜켜이 쌓인 재고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매출이 늘어날 것이고 운이 좋으면 연봉이 인상될 지도 모른다! 자, 그런데 여러분 회사의 경쟁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래도 마켓은 살아나고 있단다. 그럼 이건 이런 의미다,

“마켓이 우리랑 별 상관없이 살아나고 있어요”

기업은 마켓 속에 있지만 마켓에서 소외된 기업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 마켓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그 마켓의 주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켓의 주체는 마켓을 걱정하지만 마켓에 막연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직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꿋꿋이 감으로써 스스로 마켓을 살릴 뿐이다. 그러니 이런 표현을 접한다면 “다시 일어섭시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상 열 가지 표현에 대한 해설이 일견 매우 비관적이며 염세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이야기했던 백제에 살았던 청월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 청월은 왜 목이 달아 났는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여 동의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사 내의 은유적 표현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비관적으로 이해하라는 소리도 아니다.

우리는 언어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지만 또한 흔하게 노예가 되어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비록 상대방이 은유적 표현을 쓰더라도 그것의 본질적 의미를 간파해야 한다. 잘 듣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또한 올바로 말하고 행동하기 위함이니까. 그래야 청월처럼 제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바보 같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

IT 정보를 기록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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