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의 오피스정글]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 열 가지 신화」

리더십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상이하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그것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신뢰 즉, 잘못된 신화도 다양하다. 문제의 핵심은 잘못된 신화를 고수함으로써 그것 자체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역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쯤 땀나게 걸어가면 교보타워라는 멋진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 지하에는 2백만 권 이상의 책이 쌓여있다. 책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실용 서적 코너에서 리더십과 관련한 수 십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다. 감각적인 문구와 가독성 높은 글꼴, 예쁘게 양장 포장된 책들이 나 좀 사달라고 손짓을 한다.

책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영화를 상상해 본다, 온갖 화려한 책들이 즐비한 초대형 서점에서 불이 나고 서로 빠져 나가려 아우성을 치는 상황에서 영웅적 주인공이 책들을 구출한다. 이 영화에서 돈도 많고 사람들에게 주목 받지만 인간적으로 영 글러먹은 몇몇 책들이 주인공에게 까불다가 결국 불에 타 죽는다. 영화의 제목은 ‘실용 서적들의 최후’가 어떨까? 영화의 교훈은 ‘주인공에게 잘 보인 책만 살아남는다’ 정도로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웃고 있으니 늘 과도하게 친절한 점원이 다가오려고 한다.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점원의 시야에서 탈출한다.

리더십(leadership)에 대한 책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책을 검색하면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수 천 권의 책을 쏟아 낸다. 아마 이들 중 몇 권은 이미 읽어 봤을 것이고 살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몇 권 정도는 꼭 읽게 될 것이다.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세상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단어만큼 다양한 오해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도 드물다. 어떤 곳에서 리더십은 지도자의 능력이기도 하고 어떤 시간에서 리더십은 독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어떤 상황에서 리더십은 생명이기도 하다. 리더십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상이하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그것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과 신뢰 즉, 잘못된 신화도 다양하다. 잘못된 신화는 잘못된 판단의 근거가 된다. 어떤 경우 그 신화가 너무나 강력하여 문제의 이유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리기도 하는데 외국인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신화가 좋은 예제가 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인 감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신화는 문제의 핵심을 완벽하게 벗어나게 만든다. 리더십 또한 매우 많은 문제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정작 리더십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고수함으로써 그것 자체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

리더십에 대한 열 가지 잘못된 신화는 리더십 자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리더십은 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변용 가능하다는 것과 제멋대로 이해하는 것이 전혀 다름을 알고 있다면 열 가지 잘못된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리더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 리더십은 타고난다
알렉산더 대왕의 리더십과 체 게바라의 리더십과 간디의 리더십이 같은가? 혹은 이건희의 리더십과 우리 회사 사장의 리더십과 지난 주에 입사한 신입 사원의 리더십이 같은가? ‘타고 나는 리더십’이란 전문적으로 교육된 리더십을 의미한다.

리더십은 규범과 문화 그리고 조직 속에 내재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교육과 전수라는 과정을 통해 체화한다. 극소수의 사람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전수의 혜택은 받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교육받은 리더십은 대개의 경우 권력과 이익의 유지에 복무하는데 사용된다.

이런 관점에서 타고난 리더십은 매우 극소수에게만 적용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 리더십은 배우고 받아들인다. 수 만년 이상 유지된 권력이 있어서 그들의 행동 패턴이 교육과 전수 이외에 DNA 속에 각인될 수 있었다면 모를까 마치 인간 자체가 원래 그러했다고 주장하는 ‘타고난 리더십’은 없다.

둘, 리더십은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리더십은 매우 다양하게 이해되며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상황을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리더십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열 걸음 물러서더라도 ‘지도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리더십은 그것이 필요로 하는 환경에서만 필요하며 대화와 협의 그리고 존중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만 필요하다. 변기가 3개 뿐인 화장실에서 2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 줄로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여기에 리더십이 필요한가? 아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규범과 규칙이다.

미국과 영국은 자칭 세계의 리더이며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셈인데 왜 세계무역센터가 사라져 버리고 영국 지하철에서 폭탄이 터지는 걸까? 여기에 필요한 것은 협상과 타협이다.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은 독재자와 멍청이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셋, 좋은 리더십은 착한 성격에서 나온다
리더십은 조직의 합의에 근거한다. 강제로 어떤 일을 시키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의 주요한 목적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십, 받아들일 수 있는 리더십을 구현하는 사람들은 대개 품성이 선하고 착한 경우가 많다, 당신에게만. 이게 중요하다. 주변을 둘러 보라. 자신의 조직에서 리더십이 있다고 불리거나 혹은 자신이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착하다’, 자신에게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여.러.분이 리더십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분 ‘자신에게만 착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좋다’, ‘착하다’, ‘성격’, ‘리더십’이라는 최소한 4개의 단어에 대해 임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단어는 평생을 잠자리를 함께하는 아내와도 합의를 이루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니 다시 물어보자,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착하기 때문에 리더십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착한 리더십을 갖고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과 아직은 친하기 때문에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인가?

넷, 나이가 들수록 리더십은 세련되어 진다
대개의 리더십은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리더십은 구성원에 대한 설득이 매우 중요하므로 합리적이며 이해할만한 근거를 내세워야 한다. 때문에 경험은 리더십의 매우 중요한 항목이 된다. 똑똑하지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 노숙한 경험자의 조언을 구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리더십은 더욱 세련되고 유연해지며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경험이 쌓일수록 그것의 문제점에 대해 더욱 세밀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어도 세련되기는커녕 더욱 유치하고 치졸해지는 경우도 많다.

리더십은 훈련의 과정에서 성장하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똑똑한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과 비슷하다. 1천만 개의 웹 문서가 쌓여 있을 때 검색 엔진은 비슷하게 동작한다. 그러나 10억 개의 웹 문서가 쌓여 있을 때는 똑똑한 검색 엔진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르게 동작한다. 똑똑한 검색 엔진은 여전히 재빠르게 정보를 찾아서 결과를 알려 주지만 그렇지 않은 검색 엔진은 전혀 동작하지 못하거나 검색 결과를 기다리다 완전히 지쳐 버린 후에야 결과를 낸다. 그것도 제대로 된 결과도 아니고 “서버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은 쌓여가겠지만 고뇌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리더십은 그런 검색 엔진과 마찬가지다.

다섯, 내 상사는 정말 리더십이 없다!
절대 다수의 직장인이 상사가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인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교수나 선배에 대해, 혹은 가정에서는 특히 아버지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리더십이라는 것이 늘 모두에게 이해되는 방식으로 구현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는 리더십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 있다. 혹은 이런 경우라면 정말 비참한 감정이 들겠지만 ‘나를 뺀 리더십’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현재 조직이 구현하는 리더십에서 자신이 소외된 것이다. 그러니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상사가 리더십이 없는가? 아니면 내게만 그러한 것인가?

여섯, 리더십은 무사공평해야 한다
리더십은 설득의 심리학에 기초한다. 설득을 하려면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의 내외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방의 이해관계를 도움으로써 리더십은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은 리더와 대상 뿐만 아니라 대상과 대상(구성원들)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만드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 대한 ‘무사공평’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은 어떤 경우 목적을 위해 당신을 처단할 수도 있다.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다른 일을 시키거나 혹은 회사에서 퇴출 시킬 수도 있다. 그것이 리더십이 구현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리더십은 결코 무사공평하지 않다. 리더십은 그것이 추가하는 목적과 부합할 뿐이다.

일곱, 최신의 리더십을 많이 배워야 한다
이런 생각 덕분에 지금도 리더십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경영학 교수들이 밥벌이를 하고 있다. 리더십은 거의 모든 학문에서 언급되고 있다. 특히 정치학에서 오래 전부터 리더십에 대해 다루고 있다. 경영학이 이것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이 정치적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면 굳이 리더십의 최신 이론을 배우기 위해 서점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정치학 개론을 펴 놓고 읽어도 리더십에 대한 똑 같은 이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신의 것보다 과거의 것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물론 기술 영역에도 이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떤 회사는 공자의 리더십을 표방할 수 있다. 또 다른 회사는 부처의 리더십을 기본적인 리더십의 테마로 삼을 수 있다. 최신의 리더십 이론 또한 과거의 현자와 학자들의 이론에 기초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텔레토비의 머리 크기를 보고 현명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여덟, 크게 성공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해
크게 성공한 사람 – 그게 돈이든 명예든 예술이든 간에 – 은 공통적인 리더십이 있다. 성공과 리더십의 상관관계에서 리더십이 성공을 견인했을까? 다시 말해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개의 경우 성공한 사람의 주변 인물들이 누군가 성공한 이후에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리더십’으로 과거의 일을 재해석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 행동과 현재의 행동을 ‘리더십’으로 해석하면 보기 좋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리더십은 성공의 조건이 아니라 성공의 중간 산출물로 보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현재 리더십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리더십을 만든 후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또 대박을 맞은 사람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상, 리더십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며 또한 그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산출물이다.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이 풍기는 공통된 ‘리더십의 향기’가 존재하는 이유다.

아홉, 리더십은 사업과 회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리더십은 매우 일상적인 단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 사회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회사’일 뿐이다. 리더십은 회사와 가정, 지역 사회, 봉사 단체에서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리더십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훌륭한 리더이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애인과 관계에서 리더십은 고사하고 금간 유리잔처럼 애정 누수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학교에서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사가 동네 반상회에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모든 리더십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리더십은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중 몇몇 경우에만 리더십을 발휘할 뿐이다. 나머지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는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사람, 즉 리더를 찾거나 찾아가야 한다.

아파트 진입로 개선을 위해 서명을 받는 아줌마와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리더십 강한 어떤 회사의 부장이자 그녀의 남편을 생각해 보라. 남편이 그녀의 “조직과 상황과 시기”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반대로 그녀 또한 남편이 회사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편은 단지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리더십이 사업과 회사 혹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영역에서만 발휘될 것이라고 믿을 때 리더십은 편협한 것이 되며 그것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충돌하게 된다.

열, 리더십이 회사를 살릴 것이다
리더십은 조직의 제한 범위를 확장하고 자발성을 북돋움으로써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과거의 모든 연구 분석 데이터는 강제적 시스템보다 자발적 시스템이 훨씬 효율적임을 증명해 왔다. 때문에 위기에 처한 조직이든 잘 돌아가는 조직이든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조직의 관리자는 늘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고 교육 받으며 그것을 부하들에게 전수한다. 또한 조직원들은 직급과 지위에 관계없이 리더십을 갖도록 요구 받는다. 왜냐면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릴 수도 있으며 현재의 긍정적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더십은 그러한 힘이 있다.

그러나 언제 동화적 현실이 회사를 살린 적이 있던가? 리더십은 사람에 의해 구현된다. 리더십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한 리더십은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오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내일은 그들을 퇴출시키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리더십은 용이 지키는 오래된 성에 잠들어 있는 공주에게 입맞춤할 멋진 왕자가 아니다.

리더십은 그 왕자가 타고 온 백마이며 용과 싸우기 위해 입은 갑옷과 칼과 방패다. 잠든 공주에게 키스하는 것은 왕자 자신이다. 결국 리더십이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회사를 살린다. 리더십이 동화적 현실이 되었을 때 리더십은 회사를 망하게 한다. 훌륭한 갑옷과 칼과 방패와 백마가 뭘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