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
" 나..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
" ..너 힘들어서 안돼! "
" 그래도 너 없을 때 그 아일 보면 좋을 것 같아. "
" ...... "
안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일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드디어 2살박이
딸이 하나 생겼다. 새 둥지로 이사오던 날, 시장 봐오는 나를 흘끔거리
며 졸졸 따라오는 꾀죄죄한 요키녀석을 이게 웬떡인가 싶어 냉큼 안아
들고 동거에 들어간지 넉달째다.
그와 나는 '말하자면' 신혼부부이다. 아니 학생부부이다. 신혼부부라면
아이 기다리는건 당연한 일일텐데 무슨 소리냐고의아해 하는 분이 계
실까? 우린 법적으로는 명백하게 '처녀', '총각'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이렇게 뻔뻔하도록 당당한 모습으로 글까지 쓰
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주위의 성원(?)에 힘입어 그와의 보금자리를
꾸민지도 다음달이면 꼭 일년이 된다. '오늘은 뭘 해먹으면 맛있었다고
소문이 날까'를 걱정하며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고, 그의 속옷을 챙기고
셔츠를 다림질하고, 월말에 낼 세금을 계산하고 가계부를 쓴다. 아직
방학중이라 개강까지 조금은 여유롭지만, 우린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주말이 와야만 온전한 나만의 그를 만나게 된다.
" 너 국민학교 6학년때 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히히 "
가끔 그를 놀릴 때 하는 말이다. 올해로 나는 스물다섯, 그는 스물둘이
다. 친구들이 학사모를 쓰고 카메라앞에서 폼을 잡을때 나는 철이 든건
지 노망이 난건지 늙다리 새내기가 되었다. 그가 과대표를 맡아 열심히
뛰어다닐 때 난 같은 과의 형과 사귀느라 학교생활은 뒷전이었다. 나중
에야 알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
었다고 한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학교가 총파업에 들어갔을 즈음, 사귀던
형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에 간 나는 새삼스럽게도 투쟁중인 그를 보게 되었다. 어리지만 사려깊
은 행동과 마음씀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게 됐다. 하루의 일과는 호프집
으로 이어졌다. CC였을 때 과동기들에게 깎인 점수를 만회하려는 듯 난
기꺼이 '간빠이'를 외쳤고, 그도 한잔 술로 하루의 피곤함을 씻으려는
듯 퍼부어 댔다.
한잔 술에 눈이 맞고 두잔 술에 정이 든다던가. 사람들은 우리를 '술CC'
라 불렀고, 어느덧 우린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우리집 요주의대상 1호였
다. 그를 만나면서부터 나의 귀가는 자정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와 동
시에 이루어졌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통화로 부모님의 눈총을 받고 있
었다. 그 날은 그가 취한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었다.
" 저기.. 아버지 아니시냐? "
" ..어? "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 했다. 뒷머리를 잡고 주춤하는 그와 검붉
게 물든 그의 하얀 셔츠, 휘청이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져 갔다.
딸자식 걱정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딸자식이 술에 취한 것도 모자라
외간남자의 부축을 받고 있는 것에 화를 참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그가
누군지를 알아차린 아버지는 이내 가지고 나온 휴대용 후레쉬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셨다. 그 날 일은 두번 다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엄마 아빤 아무렇지
도 않으세요? "
" 사람이나 짐승이나 말안듣는 것들은 다 맞아야 정신차리는 법이다! "
" 고소하라고 그럴꺼예요. 이건 살인미수라구요! "
" 잔소리 말고, 학교나 때려치워!. "
자퇴와 휴학 중 하나를 택하라는 부모님과 그러면 집을 나가겠다며 맞
서던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2학기 등록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부모님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그를 향
하는 나의 마음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막내동생과 함께 외출을 당했고, 백화점에서 접선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다니는 것을 엄마의 친구분이 보셨고, 여전히 서로 만난다는 사실
이 부모님께 알려졌다.
" 그 아이는 안 된다. 한두살 차이도 아니고.. "
"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엄마는 아빠하고 일곱살 차이잖아요! "
" 남자하고 여자하고는 달라. 아무튼 그 아이는 내가 용납 못한다! "
생각보다 완강한 부모님께 못이기는 척 정리하고 오겠다며 강릉으로
향했던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물론 그와 함께였다.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입을 맞췄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
국 들통나고 말았지만 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집안의 맏딸로써
책임이 막중함을 알지만 내게는 그가 더없이 소중했다. 살림밑천이라
고 좋아하셨다던 부모님은 24년동안 당신 말씀 거역하는 것 없이고분
고분하던 큰딸이 당신의 기대를 져 버렸다고 분통을 참지 못하셨다.
" 그래, 할게 없어 네 동생보다도 더 어린놈한테 미쳐 있냐! "
" ...... "
"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난 좀 이겨 봐야겠다! "
여름이 지나고 개강을 했다. 새벽같이 나와서 12시 땡치면 집에 들어
가는 일과 부모님과 나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계속 되었다. 그럴
수록 그와의 사랑은 커져만 갔다.
그의 부모님은 당신의 외아들과 매일같이 통화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
을 알고 계셨고, 내 나이가 많았어도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눈치였다.
만일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아셨다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하
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일단 덮어
두기로 했다.
" 아버지 말을 듣겠냐, 아니면 네 마음대로 할꺼냐? "
" ...... "
" 그 아이와는 헤어지고 학교도 그만둬라. "
" 못 그러겠다면요. "
" 그러면 내 눈앞에서 없어져 버려! "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나는 대충 입을 옷가지와 책을 챙겨서 24년
동안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다리
고 있던 그의 품안으로 뛰어 들었다.
사정을 들은 그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젊
은 혈기에 잘못 생각한 거라며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셨다. 말은 하
지 않았어도 당신의 유일한 혈육이니 받아주실 것이라 믿었던 그 역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도 나와 같은 길을 택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방을 구했고, 엄마 생신날 남대문시장에 살림살이를 사러
나갔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워야 할 날을 난 일부러 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살아생전에도 다하지 못 한다고 했는데,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큰지 헤아려 보면
그 안타까움은 가슴속에서 녹아 버리고 만다.
" 야~ 우리과에 그 '이해 안 되는 커플' 말고 또 잘되는 커플 없냐? "
우리의 용감무쌍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우리
에게 하는 소리다. 자칭 신세대라는 친구들도 이런 말을 하는데 기성
세대인 우리 부모님들께는 조금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여유로
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집 나와 생활한지 일년만에 이젠 나름대로 생
활에 리듬이 생겨서인가 보다.
아버지는 자식이기는 부모가 되겠다고 하셨다. 물론 홧김에 그러셨다
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물론 간
간이 소식을 듣긴 하지만 집 나올 때의 그 용감함은 어디로 가버렸는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패배'를 인정하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입버릇대로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고 하셨으니까..
- 나가며 -
그는 스물둘의 외아들, 나는 스물다섯의 맏딸.
우린 그렇게 만났다. 혈연의 매듭을 끊고, 혈연의 정과 책임도 져버리
고 야반도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사는 지금, 남녀가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은 동화속 환상도 아니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교
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이며 생활이란 걸 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방법의 차이일뿐 나쁜 짓은 아니지 않은가.
스물둘의 그는 트럭 운전을 했다. 지난 학기 내 등록금을 벌려고 아침
부터 저녁까지 운전대를 잡았었다. 그의 보드라운 손바닥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혔고, 다소 앙상한 그의 팔뚝엔 울퉁불퉁 근육이 생겼다.
지금, 그는 주유소에서 밤샘을 한다. 낮에 일하는 것보다 피곤하고,
그 좋아하는 소주 한잔이 아쉽다고 하지만 더 '짭짤하다'고 좋아한다.
내가 퇴근할 때 출근하는 그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고단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다가 속상한 마음에 떨어지는 내 눈물방
울로 그는 부스스 잠에서 깬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출근한다며 웃어
넘기는 그의 뒷모습에 잘 다녀오라는 인사로 울음을 삼킨다. 피곤에
지치고 땀에 절은 몸이라도 눈가의 웃음만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의 매력이기도 하다. 웃을 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그의 나이를 가늠
키 어렵게 한다.
내년 삼월이면 스물셋이 되는 그는 아끼던 머리를 빡빡 깎고 현역으로
입대를 한다. 3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돌아
올 그는 나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고의 나날들, 나에
대한 그의 배려인 듯 하다. 나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 하지만 죽을
때까지만 같이 살자고 해줬으면 좋겠다. 까짓 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번씩만 바뀌고 나면 평생을 서로 기대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언제든, 어디서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왔던 알라딘의 램프요정같은 그.
그래서 그의 부재(不在)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제 서서히 그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없을때 새록새록 꺼내 볼 추억거리를 만들어야겠다.
내 사랑이 얼만큼인지 알기 쉽게 보여줘야겠다.
50년 아니라 500년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겠다.
날 잊어버리지도 잃어버리지도 않도록 그의 가슴 깊이 새겨 줘야겠다
" 나..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
" ..너 힘들어서 안돼! "
" 그래도 너 없을 때 그 아일 보면 좋을 것 같아. "
" ...... "
안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일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드디어 2살박이
딸이 하나 생겼다. 새 둥지로 이사오던 날, 시장 봐오는 나를 흘끔거리
며 졸졸 따라오는 꾀죄죄한 요키녀석을 이게 웬떡인가 싶어 냉큼 안아
들고 동거에 들어간지 넉달째다.
그와 나는 '말하자면' 신혼부부이다. 아니 학생부부이다. 신혼부부라면
아이 기다리는건 당연한 일일텐데 무슨 소리냐고의아해 하는 분이 계
실까? 우린 법적으로는 명백하게 '처녀', '총각'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이렇게 뻔뻔하도록 당당한 모습으로 글까지 쓰
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주위의 성원(?)에 힘입어 그와의 보금자리를
꾸민지도 다음달이면 꼭 일년이 된다. '오늘은 뭘 해먹으면 맛있었다고
소문이 날까'를 걱정하며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고, 그의 속옷을 챙기고
셔츠를 다림질하고, 월말에 낼 세금을 계산하고 가계부를 쓴다. 아직
방학중이라 개강까지 조금은 여유롭지만, 우린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주말이 와야만 온전한 나만의 그를 만나게 된다.
" 너 국민학교 6학년때 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히히 "
가끔 그를 놀릴 때 하는 말이다. 올해로 나는 스물다섯, 그는 스물둘이
다. 친구들이 학사모를 쓰고 카메라앞에서 폼을 잡을때 나는 철이 든건
지 노망이 난건지 늙다리 새내기가 되었다. 그가 과대표를 맡아 열심히
뛰어다닐 때 난 같은 과의 형과 사귀느라 학교생활은 뒷전이었다. 나중
에야 알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
었다고 한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학교가 총파업에 들어갔을 즈음, 사귀던
형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에 간 나는 새삼스럽게도 투쟁중인 그를 보게 되었다. 어리지만 사려깊
은 행동과 마음씀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게 됐다. 하루의 일과는 호프집
으로 이어졌다. CC였을 때 과동기들에게 깎인 점수를 만회하려는 듯 난
기꺼이 '간빠이'를 외쳤고, 그도 한잔 술로 하루의 피곤함을 씻으려는
듯 퍼부어 댔다.
한잔 술에 눈이 맞고 두잔 술에 정이 든다던가. 사람들은 우리를 '술CC'
라 불렀고, 어느덧 우린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우리집 요주의대상 1호였
다. 그를 만나면서부터 나의 귀가는 자정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와 동
시에 이루어졌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통화로 부모님의 눈총을 받고 있
었다. 그 날은 그가 취한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었다.
" 저기.. 아버지 아니시냐? "
" ..어? "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 했다. 뒷머리를 잡고 주춤하는 그와 검붉
게 물든 그의 하얀 셔츠, 휘청이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져 갔다.
딸자식 걱정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딸자식이 술에 취한 것도 모자라
외간남자의 부축을 받고 있는 것에 화를 참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그가
누군지를 알아차린 아버지는 이내 가지고 나온 휴대용 후레쉬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셨다. 그 날 일은 두번 다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엄마 아빤 아무렇지
도 않으세요? "
" 사람이나 짐승이나 말안듣는 것들은 다 맞아야 정신차리는 법이다! "
" 고소하라고 그럴꺼예요. 이건 살인미수라구요! "
" 잔소리 말고, 학교나 때려치워!. "
자퇴와 휴학 중 하나를 택하라는 부모님과 그러면 집을 나가겠다며 맞
서던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2학기 등록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부모님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그를 향
하는 나의 마음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막내동생과 함께 외출을 당했고, 백화점에서 접선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다니는 것을 엄마의 친구분이 보셨고, 여전히 서로 만난다는 사실
이 부모님께 알려졌다.
" 그 아이는 안 된다. 한두살 차이도 아니고.. "
"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엄마는 아빠하고 일곱살 차이잖아요! "
" 남자하고 여자하고는 달라. 아무튼 그 아이는 내가 용납 못한다! "
생각보다 완강한 부모님께 못이기는 척 정리하고 오겠다며 강릉으로
향했던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물론 그와 함께였다.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입을 맞췄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
국 들통나고 말았지만 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집안의 맏딸로써
책임이 막중함을 알지만 내게는 그가 더없이 소중했다. 살림밑천이라
고 좋아하셨다던 부모님은 24년동안 당신 말씀 거역하는 것 없이고분
고분하던 큰딸이 당신의 기대를 져 버렸다고 분통을 참지 못하셨다.
" 그래, 할게 없어 네 동생보다도 더 어린놈한테 미쳐 있냐! "
" ...... "
"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난 좀 이겨 봐야겠다! "
여름이 지나고 개강을 했다. 새벽같이 나와서 12시 땡치면 집에 들어
가는 일과 부모님과 나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계속 되었다. 그럴
수록 그와의 사랑은 커져만 갔다.
그의 부모님은 당신의 외아들과 매일같이 통화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
을 알고 계셨고, 내 나이가 많았어도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눈치였다.
만일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아셨다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하
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일단 덮어
두기로 했다.
" 아버지 말을 듣겠냐, 아니면 네 마음대로 할꺼냐? "
" ...... "
" 그 아이와는 헤어지고 학교도 그만둬라. "
" 못 그러겠다면요. "
" 그러면 내 눈앞에서 없어져 버려! "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나는 대충 입을 옷가지와 책을 챙겨서 24년
동안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다리
고 있던 그의 품안으로 뛰어 들었다.
사정을 들은 그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젊
은 혈기에 잘못 생각한 거라며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치셨다. 말은 하
지 않았어도 당신의 유일한 혈육이니 받아주실 것이라 믿었던 그 역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도 나와 같은 길을 택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방을 구했고, 엄마 생신날 남대문시장에 살림살이를 사러
나갔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워야 할 날을 난 일부러 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살아생전에도 다하지 못 한다고 했는데,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큰지 헤아려 보면
그 안타까움은 가슴속에서 녹아 버리고 만다.
" 야~ 우리과에 그 '이해 안 되는 커플' 말고 또 잘되는 커플 없냐? "
우리의 용감무쌍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우리
에게 하는 소리다. 자칭 신세대라는 친구들도 이런 말을 하는데 기성
세대인 우리 부모님들께는 조금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여유로
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집 나와 생활한지 일년만에 이젠 나름대로 생
활에 리듬이 생겨서인가 보다.
아버지는 자식이기는 부모가 되겠다고 하셨다. 물론 홧김에 그러셨다
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다. 물론 간
간이 소식을 듣긴 하지만 집 나올 때의 그 용감함은 어디로 가버렸는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의 '패배'를 인정하실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입버릇대로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고 하셨으니까..
- 나가며 -
그는 스물둘의 외아들, 나는 스물다섯의 맏딸.
우린 그렇게 만났다. 혈연의 매듭을 끊고, 혈연의 정과 책임도 져버리
고 야반도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사는 지금, 남녀가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은 동화속 환상도 아니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교
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이며 생활이란 걸 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방법의 차이일뿐 나쁜 짓은 아니지 않은가.
스물둘의 그는 트럭 운전을 했다. 지난 학기 내 등록금을 벌려고 아침
부터 저녁까지 운전대를 잡았었다. 그의 보드라운 손바닥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혔고, 다소 앙상한 그의 팔뚝엔 울퉁불퉁 근육이 생겼다.
지금, 그는 주유소에서 밤샘을 한다. 낮에 일하는 것보다 피곤하고,
그 좋아하는 소주 한잔이 아쉽다고 하지만 더 '짭짤하다'고 좋아한다.
내가 퇴근할 때 출근하는 그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고단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다가 속상한 마음에 떨어지는 내 눈물방
울로 그는 부스스 잠에서 깬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출근한다며 웃어
넘기는 그의 뒷모습에 잘 다녀오라는 인사로 울음을 삼킨다. 피곤에
지치고 땀에 절은 몸이라도 눈가의 웃음만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의 매력이기도 하다. 웃을 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그의 나이를 가늠
키 어렵게 한다.
내년 삼월이면 스물셋이 되는 그는 아끼던 머리를 빡빡 깎고 현역으로
입대를 한다. 3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돌아
올 그는 나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고의 나날들, 나에
대한 그의 배려인 듯 하다. 나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 하지만 죽을
때까지만 같이 살자고 해줬으면 좋겠다. 까짓 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번씩만 바뀌고 나면 평생을 서로 기대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언제든, 어디서든 부르기만 하면 달려왔던 알라딘의 램프요정같은 그.
그래서 그의 부재(不在)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제 서서히 그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가 없을때 새록새록 꺼내 볼 추억거리를 만들어야겠다.
내 사랑이 얼만큼인지 알기 쉽게 보여줘야겠다.
50년 아니라 500년도 기다릴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겠다.
날 잊어버리지도 잃어버리지도 않도록 그의 가슴 깊이 새겨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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