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아입니다. 남들 다 가지는 엄마나 아빠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남들이 고아라고 놀리고 얕잡아 보면 내게도 엄마가 있었으면...가족이라는게 있었으면...하고 바랐습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난 가족이라는게 정말은 어떤 느낌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20년... 뭘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들 다 가는 대학도 가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공부할 때 나는 야간으로 공장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나만 이런 시련을 주는거냐고...
고아라고 무시하는 사람들. 난 어느 새 부턴가 사람이란 걸 잘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난건 3달 전입니다.
그는 나와는 달리 언제나 웃음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또 그에게는 나에겐 없는 가족이란게 있었고 안정된 직장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모든게 나와는 모든게 다 달랐습니다.
그런 그가 조금은 미웠습니다.
어쩌면...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저런 따뜻한 불빛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건 단순히 그의 웃음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그가 나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고아라는걸 알아버린걸까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역시 나를 미워하게 되는걸까요...?
조금은 슬픕니다.
언제부턴가 그의 시선이 기다려지고 그의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소한 말들도 소중해지고 말았다는걸- 그는...알까요?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좁은 방안에서 혼자보내는 생일상은 아주 익숙한 일이니까요.
청승맞게 혼자 쌓아올린 초코파이의 작은 촛불을 꺼봅니다. 그리곤 혼잣말로 중얼거려 봅니다.
생일 축하해 하희야. 생일 축하해...
왠지 그렇게 말해버리고 싶었습니다.
띵동띵동. 누가 찾아온 것일까요? 이 좁고 외진 곳에는 누구도 오고싶지 않을텐데. 날 방문할 어떤 사람도 없을텐데.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반가워집니다.
가만히 문을 열어봅니다.
그입니다. 멀리서 뛰어왔는지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이 조용히 웃고 있습니다.
오늘이 내 생일인걸 어떻게 알았는지 한손에는 하얀 안개꽃이 들려있습니다.
그가... 내가 얼마나 저 꽃을 좋아하는지 알리가 없겠지만 바보같이 눈물이 납니다.
"생일 축하해"그가 말합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요. 아무말도 나와주지 않습니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천천히 돌아서며 뛰어가는 그를 붙잡고만 싶은데 정말 바보같이 아무말도 어떤 행동도 취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루...또 하루. 언제부턴가 일을 마치면 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역시 바쁘고 힘들텐데도 언제나 사람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아무말 없이 나를 기다려줍니다.
가끔은 친구에게 들었다며 재미있는 말도 들려주고 우스갯소리로 나를 놀리기도 합니다.
그는 정말 내가 고아여도 상관없는 걸까요. 그에겐 아무렇지 않은걸까요. 바보같은 나 그에겐 잘 웃어주지 못합니다.
이미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표정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죠.
이런 나라도 그는 괜찮은가 봅니다. 나보다 더 바보같은 그 사람... 변함없이 웃고있는 저 모습을 보면요.
하지만 그 사람 알까요?
내가 살아왔던 날들을 통틀어 이와같은 행복 느껴본적 없었다는 것을요.
차마 내가 가질수 없을것 같은 이 행복에 한없이 기쁘다가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픕니다.
쿨럭쿨럭. 발작같은 기침이 터집니다. 요 며칠부터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지고 호흡하기도 곤란하고...두통같은것도 자주 입니다.
무슨일일까요. 별일 아니여야되는데. 이런 나를 그사람 걱정스럽다는듯 쳐다봅니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는 중에서도 잠깐 기다리라며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뛰어가 약을 사옵니다.
"감가약이야. 먹어. 이거 먹으면 얼른 나을거래."
그는 바봅니다. 아픈건 난데 왜 그가 더 아픈 표정을 띠고있는지 난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하도 열이 많이나, 의료보험혜택도 되지 않는걸 뻔히 알면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몇가지 검사를 하는 중에 의사선생님 표정이 이상합니다. 왜 저런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걸까요.
쿨럭쿨럭. 다시 기침이 입니다. 이번에는 잘 멎지 않습니다. 왜 이리도 식은땀이 흐르는 걸까요...
"보호자와 같이 오십시오...아무래도 좀..."
"전...보호자가 없는데요..."
"...그럼 본인에게 말해야 되겠네요.유감스럽지만 살수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것 같습니다. 마음에 준비를 해두는것이 나을듯 하군요. 그리고 이건 수술한다해도 재발한다거나 성공율도 낮아서... 변명은-암입니다. 길다 해도 1~2개월뿐이 남은 시간이 없을것 같군요. 더 빨리 오셨더라면 극성까지 안갔을텐데.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가득 퍼져있습니다.그동안 통증같은것도 많았을텐데..."
믿기지 않습니다.
내가 암이라니. 물론 가끔씩 심장부위가 아리고 자주 빈혈을 일으킨적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몸이 약해서 그런거니 생각했는데...
이상합니다.
살날이 얼마남지 않은걸 안 이순간도 하늘은 어쩌면 저리도 푸른걸까요.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1년이라도 아니 10년이라도 더 살수 있을것만 같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아직 공장에 갈 시간은 안되었습니다.
쉬고 싶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병원에서 준 항암제약도 아직 돈을 가불하지 않았습니다.
왠지...그가 보고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의 회사앞까지 와서 그를 기다려봅니다. 그사람도 이때동안 이렇게 나를 기다렸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저기...저사람 걸어오는게 보입니다. 나를보곤 놀라면서도 언제나 그랬듯 활짝 웃고있네요.
바보같은 나 그런 그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 그대로 바라만 봅니다.
난 이제 그에게...준비된 말을 해야만 합니다.
언제부턴가 너무 사랑하게 된 그에게 이별을 얘기합니다. 그사람 어이없어하며 나를 바라봅니다.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 공허한 웃음만 나오고 맙니다.
그런 나를 그는...아무말없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서는 눈물이 나오는걸 꾹 참아봅니다.
억지로 싫은척 귀찮은척 그를 대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이런 행동으로 대해야만 하는 내가 또 너무 우스워 바보같이 어쩌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에게서 도망쳐버립니다.
내일이면 공장도 그만둬야 하는걸까요...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날수 없는걸까요...
쿨럭쿨럭.커억. 입에서 새빨간 핏물이 나옵니다. 누가 볼세라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립니다.
그래도 핏물이 손에서 비어져나와 옷이며 입주위를 빨갛게 뒤엎고 맙니다.
그러나 바보같은 나 그래도 기쁩니다.
이젠 그사람 내가 죽더라도 알지 못할테니까... 슬퍼하지 않을테니까... 언젠간 다시 웃을수 있을테니까... 다른 좋은여자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같은 못난 여자가 아닌 그에게 잘어울리는 참하고 예쁜 여자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모든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한없이 지켜주고만 싶은 그런 여자가 있습니다.
저 하얀얼굴이 웃으면 더 이뻐보일텐데. 저 빨간 입술이 웃음을 터트리면 더 아름다울텐데.
그녀는 한번도 내게 웃어준적이 없습니다. 늘 표정없이 날 바라보곤 합니다.
그런 그 여자 앞에서 언제부턴가 나는 웃음밖에 지을줄 모르는 바보가 되고 맙니다.
혹시나 내가 웃으면 그녀도 따라웃지 않을까 바보같은 기대를 하며 그녀 앞에선 언제나 웃음을 보이는 내가 됩니다.
그녀는 고아입니다.
남들 다 다니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 많지도 않은 돈 벌려고 공장에서 밤늦게 일만 하는 여자입니다. 친구도 없고 말같은것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고아라고 깔보고 무시할때면 왠지 자꾸 화가 나고 맙니다.
처음엔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여자에 대한 사소한 연민, 그뿐인줄 알았죠.
날이 갈수록 그녀만 생각하게 되고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싶고 보고있어도 자꾸 그립고...
사랑은 아닐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피하고맙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정말 어떤것인지 잘몰랏고 혼란스럽기만 했으니까요.
그러나 바보같은 나 어찌된 일인지 떨어져 있으면 잇을수록 그녀가 자꾸 보고프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이 되었을때...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하얀 안개꽃을 한아름 사고맙니다.
바보같은 나 혼자서 작은 방을 지키고있을 그녀에게 내가 작은 위안이 되어주고만 싶습니다.
공장사람들에게 그녀의 집위치를 물었을때 그들이 말합니다. 경계가 완만한, 흔히 달동네라 불리는 그곳에 그녀가 살고 있답니다.
가슴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왓을지 그녀의 열악한 환경때문에 눈물이 나고 맙니다.
엉뚱한 놈 급히 뛰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혹시나 12시를 넘겨버리진 않을까... 그녀의 생일에 늦어버리진 않을까...
바보같은 나 그녀의 집앞에서 자꾸 망설이고 맙니다.
혹시나 내가 그녀의 집에 찾아와서 그녀를 본다는것이 그녀에겐 곤란한일은 아닐까. 그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것은 아닐까. 한참을 땅바닥에 고개를 박고 심호흡을 하다 결국 문에 대고 노크를 해봅니다.
그녀가 나옵니다. 나를보고 약간 놀란듯 우두커니 서 있네요.
예상대로 그녀는 혼자서 조촐하게 생일을 맞고있었던 겁니다.
울컥 눈물이 솟아오르는걸 참고 그녀에게 조용히 미소를 건넵니다. 내가 울면 그녀가 당황해 할테니까요.
그러곤 아무말없는 그녀에게 꽃을 건네곤 뛰쳐나와버립니다. 더이상 그녀를 보고있다간 눈물부터 나올것 같아 뛰고 또 뛰었습니다.
다음날...그 다음날... 버릇처럼 그녀가 일을 마치고 나올때까지를 기다립니다.잠시라도 피곤에 절은 그녀에게 짧은 휴식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밥은 제대로 먹고있는지,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너무 걱정이 되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것만 같습니다.
그녀는 알까요.
그녀를 위해 매일 회사동료들에게 재미있는 얘기같은걸 주워듣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유머라도 일부러 웃기게 들려주기 위해 매일 거울을 보며 혼자서 연습을 한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여자... 언제부턴가 안색이 질려버린듯 파리해져 보입니다. 원래 하얀얼굴에 창백하니 질린 저 얼굴을 보니 덜컥 가슴이 내려 앉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감기라고 합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 그녀를 기다리게 하고 근처 약국을 사방으로 찾아 다니며 감기약을 하나 샀습니다.
행여라도 저 여자 약같은거 잘 먹지않을수도 있으니까... 약을 건네주며 확신을 받아냅니다.
자꾸만 기침을 해대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 내가 대신 아팠음합니다. 차라리 아픈 사람이 나였음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가 회사앞에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기침이 이는듯 쿨럭대고 잇었지만 내가 지켜보면 억지로 참는듯 입에 손을 가져가고 맙니다.
그런 그 여자의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서...가슴이 아팠지만 난 또 웃기로 했습니다. 괜히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긴 싫으니까요.
바보같은 나 그녀에게 활짝 웃어보이고 맙니다. 그런 나에게 그 여자 뭐가 그리 슬픈듯 날 자꾸 쳐다봅니다.
그녀가 그렇게 오랫동안 날 쳐다보는게 처음이라 괜시레 웃음이 일고 맙니다.
그 여자...잠시 고개를 숙이곤 또박또박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행여라도... 내가 못알아 들으면 어쩌나하고 억지로 또박또박- 냉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 냉정한 말들이 얼마나 떨리고 있으며 젖어있는지.
바보같은 나 잠시 이 상황이 너무나도 믿을 수 없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봅니다. 그런 내 모습에 그녀가 피익 웃어보입니다.
분명 처음 보는 그녀의 웃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가슴아픈걸까요. 아마도 그건 그 여자의 웃음이 웃는다기 보다는 차라리 울어버릴만큼 가슴아파하고 있는듯이 보여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공허하게 웃다가 그 여자 무엇이 그리 급한듯 내 곁을 떠나 도망치듯 뛰어나갑니다.
바보같은 나 뛰어가는 그여자 잡지도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헤어지자했을때도 흘리지 않았던 그 눈물을 말입니다......
..
|
Recent comment